지난 2007년 6월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1면에 새로 출시한 휴대폰의 스펙(spec·제품의 성능과 기능을 총칭)을 설명하는 기사를 실었다.
텔레그래프가 보도한 휴대폰은 첨단 기술의 작은 전시장이었던 당시 휴대폰의 흐름과 달랐다. 3세대가 판치는 판에 2.5세대로 구동되고 200만 화소 카메라에 크기는 손바닥만 했다. 더욱이 해당 휴대폰을 출시한 회사는 휴대폰 시장에 처음 진출한 회사였다. 한 마디로 무모한 도전이라고 일축한 견해도 많았다.
당시 휴대폰 시장은 노키아가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었고 삼성전자가 2위였다. LG전자가 프라다폰, 초콜릿폰을 선봉으로 내세워 모토로라를 제치고 3위를 넘보고 있었다. 업체들은 휴대폰 크기와 두께는 나날이 줄이면서도 1000만 화소의 카메라로 대변되는 각종 기능을 집약하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시장의 흐름을 재빠르게 읽어 다품종 생산으로 휴대폰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기세등등했다. 당시 LG전자 관계자는 "조만간 노키아를 제치고 세계 휴대폰 시장 1위를 우리와 삼성이 다툴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텔레그래프는 휴대폰 시장에 갓 진출한 기업이 내 놓은 "이 휴대폰을 주목해야 한다"며 1면에 소개했다.
바로 애플의 아이폰이었다. 한국이 휴대폰 시장을 호령하던 2007년 아이폰이 출현했다. 아이폰 등장으로 세계 휴대폰 시장은 스마트폰으로 재편됐고, 스마트폰 대응에 늦은 삼성전자, LG전자는 위기를 맞았다.
텔레그래프의 안목이 세계 최고 엔지니어가 모인 삼성과 LG에겐 없었던 것일까. 더욱이 아이폰의 2007년 출시 이후 양사는 1~2년간 대응할 시간이 있었다. 이런 ‘지각 대응’은 양사가 식견이 없었던 탓이라기보다는 통찰력이 구현될 통로가 막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삼성전자의 한 연구원은 "아이폰 열풍을 눈여겨본 사내 인사도 많았다. 한 부장급 연구원도 초기부터 스마트폰에 맞춰 리소스(자원)를 집중해야 한다고 수차례 주장했지만, 호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안드로이드를 만든 루빈 현 구글 부사장이 제 발로 삼성전자와 LG전자를 2004년, 2007년 각각 방문했지만, 냉대만 받고 돌아가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신기술 개발을 함께했던 출연연구소 A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경직된 내부 조직 문화에 놀라기도 했다. A 연구원은 "이미 세계적 기업에 올라선 삼성전자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얻는 성과보다 실패의 후유증을 염려하는 경향이 짙었다"며 "신기술의 사업화 방안을 부장이 이사에 설명하면 '실패 책임을 당신이 질 것이냐'는 질타를 받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이 위상이 높아지면서 도전 정신이 쇠퇴하고 언로(言路)가 막히는 부작용이 생겼다는 진단이다.
정부 규제도 IT강국 한국을 병들게 하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다. 세계는 스마트폰 광풍(狂風)에 휩싸였지만, 정작 국내는 한 점 바람도 불지 않았다. 정부가 온갖 이유로 아이폰, 블랙베리 등 스마트폰의 국내 출시를 막았기 때문이다. 2007년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수시로 확인하는 한 외국계 기업의 CEO는 "후진국에서도 되는 스마트폰이 IT강국이라는 한국에서 안 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9년 말에서야 아이폰의 국내 출시를 허용했다. 아이폰의 국내 출시가 시작되면서 기업뿐 아니라 정부, 시민들이 스마트폰 시대의 충격을 받았다. 정부의 스마트폰 규제 사례는 정보통신부가 없어지는 바람에 이런 스마트폰 위기를 맞았다는 일부 주장의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근거로 사용된다.
충격은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국내 기업을 깨웠다. 삼성전자보다 늦게 깨어난 LG전자는 작년 2분기 이후 휴대폰 분야에서만 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해 총 85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갤럭시S로 기사회생한 삼성전자는 지난 15일 구글의 모토로라 모빌리티(모토로라의 휴대폰 사업부문) 인수로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한국 휴대폰'의 앞길에는 점점 짙은 안개가 드리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