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왕복항공권도 받지 못했고 월급도 백인 강사보다 적었습니다. 원어민강사로 일하러 고국을 찾았지만 한국계라는 이유로 백인과 다른 대우를 받게 됐네요."

재미교포 2세 영어 원어민강사 A(29)씨는 경기도 구리의 한 영어학원에서 지난해 3월부터 1년 동안 근무했다. A씨는 계약기간이 끝난 후 다른 영어학원의 조건을 알아본 뒤에야 그동안 근무했던 학원에서 자신이 원어민강사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을 알게 됐다. 일반적으로 원어민강사를 채용하는 학원은 1년 이상 근무하는 강사에게 집과 왕복항공권, 한 달치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이 관례다.

한 해 우리나라에 영어 원어민강사로 입국하는 외국인 수는 대략 1만~1만2000여명에 이른다. 2010년 12월 기준 한국에 머무르는 원어민강사 수는 총 2만3000여명. 이 중 교포 2세나 입양아 출신 등 한국계 원어민강사는 10~15% 정도다. 하지만 이들은 백인 원어민강사보다 낮은 대우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B(31)씨는 "영어마을인 'A빌리지'에서 1년여간 영어강사로 일하며 원어민이 아닌 내국인 영어강사 수준의 임금을 받았다"며 "이는 민족을 이유로 한 임금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B씨는 생후 18개월 만에 미국에 입양된 미국국적자로 영어구사능력에서 다른 백인 강사와 차이가 없었다. 인권위는 A빌리지에 임금 차액 지급과 재발방지 조치를 권고했다.

한국계라는 이유로 낮은 임금을 받는 것에 대해 영어학원 운영자들은 "학부모의 백인 선호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7년째 영어학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강사 홍모(37)씨는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눈이 파랗고 머리가 노란 원어민만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분당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정모(53) 원장은 "이제까지 교포는 물론 유색 인종 원어민 강사를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학부모가 백인 강사를 선호하는데 비즈니스 측면에서 교포나 입양아 출신 강사를 고용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학부모가 학원과 강사를 결정하는 저연령층에서 백인 강사 선호가 뚜렷했다. 유치원생 자녀를 둔 학부모 최모(42·서울 도곡동)씨는 "유치원생에겐 발음이 중요한데 한국인 네이티브(원어민)의 발음이 문제가 있을 것 같아 백인 선생님을 찾는다"고 했다. 실제로 백인 강사보다 자격증과 경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 백인 강사 N(29)씨는 "경력이 전무한 나와 1년 경력의 유색 인종 강사가 있었는데 내가 채용됐다"며 "나중에 학원 측에서 '백인이라 뽑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어민 채용을 중개하는 업체에선 오히려 한국계 강사가 장점이 많다고 한다. 한국을 자신의 모국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책임감이 높아 일부 백인 강사처럼 수업을 뒷전으로 한 채 놀러다니기에 바쁘거나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적다는 것이다. 경북 문경의 한 학교에 근무하는 홍란휘(22)씨는 "아이들 역시 외모 덕택에 교포 선생님을 더 친근하게 여긴다"고 했다.

원어민강사 중개업체 'EZ영어' 정재욱(38) 실장은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백인 강사를 통해서만 문화의 이질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입양아 출신 원어민강사 최모(30)씨는 "고국을 알고 싶어 한국을 찾았는데 채용과 대우에서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