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 한국 초유 누드 퍼포먼스 하던 날… 관객들 입이 떡, 박수도 잊어

조선일보
  • 윤형주
    입력 2011.08.12 03:04 | 수정 2011.08.12 09:27

    [13] 청년문화 집결소 세시봉
    세시봉은 단순한 음악감상실 이상… 서정주·박목월·박재삼이 시 읊고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유명 인사가 젊은이와 스스럼없이 토론하던 곳

    정강자씨 최근 모습
    1968년 봄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서울 음악감상실 '세시봉'에 앉아 있었다. 유독 사람이 많은 하루였다. 200여석 실내에 300명 가까이 들어찼다. 의자가 모자라 보조 의자를 잔뜩 꺼내놓았다. 평소 때와 달리 세시봉 입구엔 '미성년자와 고등학생 입장 불허'라 적은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날 프로그램으로 행위예술이 예정돼 있었다.

    시간이 되자 미국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음악이 흘렀다. 한 여인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러닝셔츠와 타이츠 차림이었다. 머리엔 흰 머플러를 감았다. 다른 남자들이 나와 칼로 러닝을 찢고 타이츠를 벗겼다. 팬티와 머플러만 남았다. 대신 투명 풍선으로 몸을 감쌌다. 이 과정 내내 여자는 시종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 갑자기 남자들이 달려들었다. 모든 풍선을 터뜨렸다. 상반신을 온전히 드러낸 그녀만이 서 있었다. 실내는 잠잠했다. 관객들은 박수치는 것도 잊었다.

    미니스커트만 입어도 모두가 쳐다보는 시절이었다. 당시 한 일간지는 '기이하고 미친 짓 같은 일을 거듭해오는 청년작가 연립회'가 꾸민 일이라 기록했다. 이들에게 '문화적 테러리스트'란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현대미술가 정찬승과 강국진, 전위예술가 정강자가 벌인 '투명풍선과 누드'란 제목의 퍼포먼스였다. "현장에 취재 나온 기자가 '다 벗으면 안 된다'고 만류하지만 않았어도 다 벗을 각오"로 무대에 섰던 정강자는 당시 25세였다. 30년 가까이 지난 1997년 그는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30년 전의 서린동 낙지골목 음악감상실 '세시봉'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그 곳은 지금까지 열병에 들뜬 사람처럼 살아온 내 예술 인생을 낳은 자궁과 같은 곳이다.'

    화가 정강자씨가 대학 졸업 이듬해인 1968년 세시봉에서 상의를 벗은 채 풍선을 불어 몸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한국 초유의 누드 해프닝’으로 알려진 이 사건으로 정씨는 단숨에 유명 인사가 됐다.

    맞다. 세시봉은 단순한 음악감상실이 아니었다. 통기타 음악의 산실 역할만 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청년문화의 최초 집결지가 세시봉이었다. 전유성은 무대에 정장 차림으로 올라가 가위로 넥타이를 자르곤 아무 말 없이 인사만 하고 내려갔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시사만화 '두꺼비'로 유명했던 만화가 안의섭, 좌담 프로에 많이 출연했던 최신해 청량리 정신병원장,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 이소동 전 장군이 무대에 서서 청년들과 토론했다. 서정주·박목월·박재삼 시인 등 문단의 거장들이 시를 낭송하고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대학생이 주역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문화공간이 세시봉이었다.

    세시봉은 1953년 서울 명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최초 주인이 누구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후 이흥원씨가 인수해 충무로 1가와 소공동을 거쳐 서린동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시봉 시대'를 열게 된다.

    세시봉이 대학생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주인 이흥원씨의 역할이 컸다. 세시봉을 운영하는 그의 철학은 확고했다. 술은 절대 반입 금지였다. 술 취한 사람도, 주먹 쓰는 사람도 출입 금지였다. 평안도 출신이었던 그는 육척 장신이었다. 장대 걸레를 팔목 힘으로 드는 사람이었다. 간혹 술 취한 이가 입장하려 하거나 난동을 피우려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 이흥원씨가 "메야? 술 먹었어? 나가라우"라고 말하면 상황 종료였다.

    다양한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수용해 다른 음악감상실들을 압도했다. 명동엔 심지다방과 황실다방, 시보네가, 무교동엔 연다방이, 광화문 인근엔 아카데미 음악감상실과 금란다방이, 종로엔 디쉐네와 르네상스, 아폴로 등의 음악감상실이 서로 경쟁하던 시절이었다. 이중 세시봉만큼 많은 프로그램을 보유한 곳이 없었다.

    세시봉은 나와 송창식이 데뷔한 무대인 '대학생의 밤'부터 '성점(星點) 감상실', '명사초대석', '삼행시 백일장'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일종의 별점 매기기였던 '성점 감상실'이 인기가 많았다. 당시 TBC 프로듀서였던 이백천씨와 주간한국 정홍택 기자의 합작품이었다. 사전 정보 없이 음악을 들려준 뒤 세시봉을 찾은 젊은이들이 별점을 매겼다. 결과는 매주 주간한국에 실렸다. 패티 김·윤복희·최희준 같은 당시 유명 가수들의 곡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신곡합평회'도 열렸다. 음반을 녹음하기 전에 관객 반응을 보는 시간이었다. 김강섭 전 KBS 악단장이나 김용선 전 TBC악단 피아니스트의 반주에 현미·김상희·정훈희·김상국·남일해 등 기성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평가를 받았다.

    [키워드] 세시봉음악감상실n.com/search/total.search?categoryname=&categoryd2=&query=%EB%88%84%EB%93%9C+%ED%8D%BC%ED%8F%AC%EB%A8%BC%EC%8A%A4" target=_blank>누드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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