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화 육참총장 연행 후 수경사에 포위돼 나는 자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조선일보
  • 최현묵 기자
    입력 2011.08.10 03:03 | 수정 2011.08.10 08:20

    12·12 등 軍시절의 고비

    노태우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나눈 추억을 상세하게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1956년 노 소위가 모신 첫 사단장이었다. 박정희 사단장을 처음 만난 데 대해 그는 "체구가 작은 편이면서도 침착하고 속이 꽉 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큰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말했다. 5·16혁명 이듬해인 1962년 초 박 전 대통령은 방첩부대에 근무하던 노 전 대통령을 불러 보릿고개가 언론 보도만큼 심각한지를 확인하고 싶다며 "자네(가) 암행어사 역할을 한번 해 주게"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유신 말기인 1978년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임명돼 청와대에 입성했다. 산림 가꾸기에 큰 역점을 뒀던 박 전 대통령은 그동안 잘 자라지 않던 나무들이 최근 급속히 성장하는 이유를 농림수산부 장관을 지낸 최각규 상공부 장관에게 물었으나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이때 노 전 대통령이 "산성이던 한국 토양이 알칼리성으로 바뀌어 나무들의 성장을 촉진한다"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은 "맞았어! 노 장군 말이 맞았어! 이제야 궁금증을 풀었구먼"이라며 "노 장군, 산림청장도 겸하면 어때?"라고도 했다.

    1974년 자신의 부대를 찾아온 전두환 1공수특전여단장과 악수하는 노태우 당시 9공수특전여단장. /조선뉴스프레스 제공
    노 전 대통령은 10·26 직후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신군부가 모여있던 30경비단을 포위한 상황에 대해 "나는 자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30경비단에 들어온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고, 우리는 '기회는 이때'라고 판단해 군을 출동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학생들의 반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5·17 계엄 확대 결정에 대해 "사람의 심리는 새벽 2~3시경 가장 약해진다. 이 시각을 기해 서울 주요 대학에 병력을 출동시켰고 예상대로 저항은 거의 없었다"며 "서울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치안 유지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광주사태의 진범은 유언비어"라며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들은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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