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술核 철수방침 정보 빼내 비핵화 선수쳤다"

입력 2011.08.10 03:03

"북한도 모른다, 비밀 지켜라"… 中, 수교접촉 때 철통보안 요청… 협상 도운 선경 中서 특별대우
소련 외무부 장관도 빼고 진행, 한·소 수교 한때 사기극 우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한·중(韓·中), 한·소(韓·蘇) 수교 등 '북방 외교' 및 남북 관계에 얽힌 비화들을 상당수 공개했다.

◆북방 외교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6월 제1차 한·소 정상회담과 관련, "회담 2주 전 소련의 아나톨리 도브리닌 외교수석보좌관이 한국에 와 비밀리에 만났다. 도브리닌은 고르바초프의 (정상회담) 결정은 당과 군부, 외무부 반대 속에 비밀리에 내려졌으므로 어떤 루트를 통해서건 이를 확인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우리 쪽 참모 중에는 그의 말 한마디에 놀아나는 희대의 사기극에 휘말리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도브리닌이 극비로 일을 추진해 당시 소련 외무장관인 셰바르드나제조차 몰랐을 정도였다"고 했다. 정상회담 당시 노 전 대통령이 "김일성과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요청했던 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기념 촬영을 거부하려 했던 일 등도 공개했다.

한·중 수교와 관련, 중국 측은 사전 비밀 접촉에서 "북한에 사전 통보하지 않을 테니 한국도 어느 나라에도 (수교 협상을) 알리지 말라"고 강력히 요청, 대만에 알리지 못했고 그 결과 대만이 수교 단절 등의 조치를 하게 됐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 과정에서 옛 선경그룹의 이순석 전 사장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썼다. 이 전 사장이 중국을 오가며 중국 측 메시지를 노 전 대통령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런 덕분에 한·중 수교 이후 내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측이 선경그룹 사람들을 덩샤오핑의 전용기에 태워 명소를 관광시켜주는 등 특별 대우를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노태우 대통령 부부가 1989년 11월 18일 유럽 순방 길에 기착한 알래스카의 설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조선뉴스프레스 제공
◆남북 관계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취임 직후, 릴리 주한 미 대사와 메네트리 미8군사령관으로부터 "대한민국에 (미군) 전술핵이 있습니다" 하는 보고를 받는다. 미국 측은 사전에 "매우 중요한 보고가 있다. 김종휘 외교안보수석이 직접 통역을 하고 다른 사람은 배석시키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은 그때까지 주한미군 전술핵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않는(NCND)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에서 핵무기가 여러 군데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한 군데뿐이었다"고 밝혔다.

1998년 측근들과 대구 팔공산을 찾은 노태우 전 대통령. 왼쪽 옆이 부인 김옥숙 여사. /조선뉴스프레스 제공
노 전 대통령은 1991년 가을 김종휘 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배치된 전술 핵무기를 철수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한국 내 전술 핵무기를 곧 철수할 것 같다"는 정보 보고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하고 우리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선수를 쳐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11월 8일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발표했다.

남북 정상(頂上)회담에 대해 김일성은 줄곧 소극적이었으나 단 한 번 노 전 대통령을 북한에 초청했다고 한다. 1992년 봄 윤기복 조평통 위원장이 김일성의 특사로 친서와 초청장을 갖고 서울에 왔다. 하지만 초청 시기가 김일성 생일과 맞물려 있었고, 당시 박철언 체육청소년부 장관이 '돈과 관련이 있다'고 해서 노 전 대통령은 거절했다. 그는 "모양새를 구겨가면서까지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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