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에게] TV 史劇, 역사 왜곡의 정도가 지나치다

조선일보
  • 황원갑 소설가·역사연구가
    입력 2011.08.08 23:07

    황원갑 소설가·역사연구가
    안방극장에서 사극이 꾸준히 인기다. KBS1 주말사극 '광개토태왕'이 방영 중이고, MBC에선 '계백'을 시작했다. 사극의 인기는 시청자들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역사적 교훈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는 점은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에 반비례해 부작용도 만만찮다. 무엇보다도 역사왜곡과 날조의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광개토태왕'은 설정부터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광개토태왕이 왕자 시절 후연(後燕)과의 전쟁 때 요동성에서 맹활약했다거나, 말갈족과 목숨 걸고 싸웠다는 이야기는 지나친 상상력이 빚어낸 날조다. 광개토태왕은 12세 때인 고국양왕 3년(386)에 태자로 책봉됐고, 18세에 즉위했다. 그런데 모용수(慕容垂)가 후연을 건국하고 황제를 칭한 것은 고국양왕 1년(384)의 일이다. 그때 광개토태왕 고담덕(高談德)은 불과 10세 소년인데 무슨 요동성 파견에 전쟁 주역이란 말인가? 게다가 담망이란 친형이 있었다는 설정도 근거가 전혀 없다.

    사극의 바탕은 역사적 사실이다. 실존했던 인물과 사건이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들겠다는 욕심에 작가의 상상력이 무제한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시청자들은 사극을 통해 그것이 정말 있었던 역사라고 생각하기 쉽다. 따라서 잘못된 역사 지식을 심어주기 십상이다.

    예전에 '주몽'에선 두 아이가 딸린 과부 소서노를 처녀로 설정하고, '여인천하'에선 문정왕후의 남동생 윤원형을 오라비로 만들어 남의 집 족보까지 멋대로 뜯어고치고도, 제작 책임자가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어이없었다. '바람의 화원'에선 남자가 분명한 신윤복(申潤福)을 남장여자로 둔갑시켰으니 이는 무지나 왜곡을 넘어선 망발 수준이었다.

    '계백'도 예외가 아니다. 무왕이 우유부단한 인물로 그려졌는데, 사실 무왕은 결단성이 있고, 즉위 원년부터 재위 42년간 쉴새 없이 신라를 공격했기에 바쳐진 존호가 무왕(武王)이었다. 무왕의 제1왕후가 선화공주(善化公主)요 제2왕후가 사택부인(沙宅夫人)이란 설정도 사실 관계가 불분명하다. 최근 그리고 있는 의자왕과 계백의 어린 시절도 모두 상상력의 소산이다.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하고 재미를 앞세우는 드라마라도 역사는 몇 사람이 입맛대로 비틀거나 뒤집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가볍게 여기고, 변곡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올바른 역사교육에 역행하는 범죄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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