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중국피 6.25% 한국피 93.75%… 이 아이는 중국인입니까 한국인입니까"

입력 2011.08.04 03:00

5대째 한국 사는 화교들…
민속박물관 연구원, 인천 차이나타운 살아보니
'625 세대'로 불리는 아이들
"중국인 아빠·한국인 엄마, 5대째니 중국피 6.25%뿐"
선생님 앞에서는 중국어, 자기들끼리는 한국어
초기 '3刀 문화' 사라져…
이발사·요리사·재단사 칼 쓰는 3가지 직업은 옛말
지금은 가이드 가장 많아
집안엔 관우像이 5개… 재산·건강 지켜준다 믿어
냉장고엔 항상 만두 가득 "콩나물? 우린 볶아 먹어요"

국립민속박물관 강경표 학예사
거리에선 중국 전통 가요가 흘러나오고 붉은 건물 앞에 서 있던 상인들은 오가는 관광객을 붙들고 흥정을 벌입니다. 건물 처마에 걸린 홍등, 거리에서 풍기는 자장면 냄새, 굵은 황금선이 몸통을 둘러싼 가로등…. 여기는 인천 중구 선린동 차이나타운입니다.

본적 중국, 국적 대만, 주소 인천

저는 국립민속박물관 강경표(31) 학예연구사입니다. 저는 조사팀 5명과 함께 지난 1월 20일부터 이곳 차이나타운에 월셋방을 얻었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화교들의 생활·종교·문화·살림살이 등을 속속들이 조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민속학, 그중에서도 도시민속학에서는 한 마을에 함께 살면서 대상이 되는 이들의 삶을 세세히 기록하는 장기 체류 조사가 유행입니다.

민속박물관은 올해 처음으로 요즘 한국 사회의 한 부분인 '다문화 사회'를 보여줄 도시 민속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첫 대상지로는 130년 역사의 인천 차이나타운을 택했습니다.

"당신, F5가 뭔지 알아? 그것도 모르면서 뭔 조사를 한다고 그래?" 설레는 마음으로 어느 화교의 집을 찾아갔을 때였습니다. 주인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더군요. 화교들은 한국에서 나갈 때, 대만에 입국할 때 'F5 비자'가 필요합니다. 한국에서도 외국인, 대만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는 이들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한 화교는 자신을 일컬어 "본적은 중국, 국적은 대만, 주소는 인천"이라고 말합니다.

인천 중구 선린동 차이나타운 거리 모습(위 사진)과 지도(아래).
차이나타운의 역사는 1882년 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는 군란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보냈고, 이때 청나라 상인들이 들어와 인천(당시 제물포)항에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1884년에는 '중국인이 거주하기 위해 일정한 땅을 제공한다'는 협약이 맺어져 현재의 북성동과 선린동 일대 1만5000여㎡의 땅에 본격적으로 중국인 마을이 형성됐습니다. 우리 안의 '남의 땅'이었지요. 한때 1만명에 이른 적도 있지만, 현재 차이나타운 화교 인구는 150~200여 가구에 695명, 인천 전역에는 약 3000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인천 송도 왕조용씨 집에 마련된 작은 사당. 관우 상이 놓여 있다.

콩나물은 볶아서, 냉장고엔 만두

화교 5세대가 등장하면서 삶의 모습도 많이 변했습니다. 초기 화교들은 '3도(刀) 직업', 이발사·요리사·재단사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여행가이드가 가장 많고 한약방, 무역업, 잡화상, 식재료상 등으로 다양합니다. 대만식 학제를 따르는 아이들은 학교에서는 중국어를 쓰고, 자기네끼리는 한국어를 씁니다. 지난 5월에는 대만으로 수학여행을 간다니까 "우리나라 간다"고 좋아하더군요.

인천 송도에 사는 여행가이드 왕조용(45)씨 가족의 살림살이 조사도 하고 있습니다. 화교 가정의 70%가 화교 아빠와 한국 엄마인데, 이 집도 그렇습니다. 두 아들은 화교학교에 다니고요. 우리는 이 집안 숟가락 수까지 세고 있습니다. 물건을 통해서 생활사를 담는 조사입니다.

이 집 곳곳에는 삼국지 관우의 상(像)이 5개 있고, 관우를 모신 작은 사당까지 있습니다. 부인 김미라(44)씨는 "무력(武力)이 센 관우 상 앞에서 큰일이 생길 때마다 향을 피운다"며 "재산, 건강 등 집안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합니다. 조리 방식도 많이 다르죠. 우리는 콩나물을 무쳐 먹지만 이 집은 볶아 먹어요. 냉장고에는 인천 용현동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시어머니가 보내준 만두가 언제나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대만에서 가져오는 향신료를 늘 쓰고요. 부동산 취득 금지 등 화교에 대한 차별 정책이 많았던 1960~70년대 화교들이 일본이나 대만, 미국으로 이주를 많이 했어요. 이 집안 티셔츠 중 60%가 미국에 사는 고모가 보내준 것이라는 게 그 '물증'입니다.

지난 5월 13일 인천 화교학교에서 열린 운동회에서 학생들이 중국 전통 놀이인 사자춤을 추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이젠 한국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두 나라 문화가 많이 다르고 아직도 한국에 대해 서운한 감정도 있습니다. 그런데 차이나타운에서 중식당 '만다복'을 운영하는 서학보(53)씨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아빠가 중국인, 엄마가 한국 사람이면 중국 피가 50%씩 섞인다. 그 밑 세대에서 또 한 번 섞이면 25%, 그 아래는 12.5%…. 지금 5세대들은 6.25%다. 난 그들을 '625세대'라 부른다. 몸속에 흐르는 중국 피가 6.25%인 이들을 과연 화교라 할 수 있을까. 화교들도 언젠가는 한국 사회에 완전히 녹아들 거다. 그때 한국인들이 화교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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