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위구르자치구 내 대표적인 소수민족인 위구르인은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계 민족이다. 중국 내 인구는 840만명가량으로 여러 지역에 분산된 다른 소수민족과 달리, 인구의 95% 이상이 신장 한 지역 내에 거주하고 있다. 종교는 이슬람교이다.
원래 몽골 지역에 거주하던 유목민족의 한 분파였던 위구르족은 9세기경 톈산(天山)산맥이 있는 현재의 신장 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모와 체형은 서양인에 가깝다. 터키어와 비슷한 위구르어를 사용하고 독자적인 문자도 갖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중국어를 거의 못한다.
위구르의 역사는 독립 국가를 건설했다가 주변 강대국에 정복당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중국에 편입된 것은 청나라 건륭제 때인 1750년으로, 건륭제는 당시 위구르를 정복하고 '신장(新疆·새로운 영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국에 편입된 이후 260여년이 지났지만 위구르는 중국에 동화되지 않고 끊임없이 독립을 추구하고 있다. 청나라 지배하에서는 19세기 초반과 후반 두 차례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진압당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국민당 통치하에 들어간 뒤에도 1933년과 1944년 카스(喀什)와 이리(伊犁)를 중심으로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을 세웠으나 독립에 성공하지 못했다.
중국은 1949년 건국 이후 이곳에 일정한 자치를 허용하는 신장위구르자치구를 설치했다. 위구르 인사들을 최고위층에 발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공산당이 통치하는 구조였다. 문화대혁명기에는 이슬람 사원이 대거 파괴되는 가혹한 종교 탄압을 받았다.
한동안 중국 당국의 공안 통치 아래 눌렸던 신장의 분리·독립 운동은 1990년대 초 다시 불붙었다. 구소련 해체로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10여 개국이 잇달아 독립한 시점이다.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 등 저항 단체들도 이때 만들어졌다.
위구르족은 1995년과 1997년 이리 지역에서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으나 각각 수백명의 희생자만 냈다.
2009년 7월에는 자치구 수도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전례 없는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다. 2000여명의 위구르족이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이 폭동으로 한족 주민을 중심으로 197명이 사망하고 17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위구르족은 저항운동 과정에서 잔혹하다 싶을 정도의 폭력을 사용해 한족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지난 주말 발생한 카스 연쇄 테러에서도 폭탄을 터뜨린 뒤 한족 행인을 상대로 닥치는 대로 흉기를 휘둘렀다. 우루무치에 오래 거주한 한 외국계 기업인은 "위구르족의 한족에 대한 증오와 반목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면서 "격렬한 폭력은 이런 증오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