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 언론의 흥분이 말해주듯 한국 대중음악이 해외에서 거두는 성과는 눈부시다. 유럽 각국의 많은 젊은이가 우리 가수들을 보려고 한국 방문 열풍을 이룰 전망이다. 거의 보통명사가 된 'K팝'은 이제 미국의 팝, 영국의 록, 프랑스의 샹송처럼 글로벌 음악으로 점프할 가능성이 커졌다. 아이돌 그룹을 비롯한 주류 음악의 한류(韓流)가 대중음악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그간 조망받지 못했던 비주류와 인디 음악계의 도약이다. 인디는 당장의 시장지분은 미약하지만 희망과 비전을 담보하고 다양성을 확보해줄 산소공급원으로서 다수의 응원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한류는 격려하고 인디는 지원해야 한다.
이런 부푼 꿈을 안고 우리 정부의 문화예산 그래프를 보면 갑자기 기운이 꺾인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규모는 3조4500억여원으로 정부 전체 재정의 1.12%에 불과하다. OECD 회원국들의 문화예산이 정부재정 대비 평균 2.2%이니, 딱 절반 수준이다. 이런 예산으로는 정부가 현장에 지원과 격려를 해주고 싶어도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한류는 민간이 어렵사리 장만한 밥상인데 문화체육관광부는 밥숟가락만 얹으려 한다"(한창완 세종대 교수)는 지적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한 교수는 최근 두 애니메이션 영화 '쿵푸팬더Ⅱ'와 '소중한 날의 꿈'을 예로 들어 똑같이 한국 사람이 감독했지만 할리우드 자본의 지원을 받은 전자는 세계적 흥행을 기록했고 순수 우리 자본으로 만든 후자는 참패했다고 지적했다.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자질은 있어도 제작 환경이 너무 열악해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이 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보면 최근 한류의 깃발과 인디의 도약은 개천에서 용(龍)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예산이 이렇게 홀대받는 것은 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문화재정은 중요하지만 시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언제나 국가재정 운용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콘텐츠 강국으로 진입을 눈앞에 뒀다고, 문화가 신(新)성장 동력산업이라고 떠들지만 말뿐이고 정작 필요한 재정지원은 못 해주면서 요행만 바라는 셈이다.
일본 NHK에 한국어 프로그램이 생긴 것은 드라마 '겨울연가'와 함께 불어닥친 욘사마 열풍 때문이었다. 우리 청년층이 요즘 가장 선호하고 유망하다고 여기는 직종이 문화콘텐츠 산업과 관광산업 분야다. 한국 문화에 대한 외국의 인식도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달라졌다. 지난 3월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의 한국문화원에 한국어강좌를 개설하자마자 수강생 정원 200명이 순식간에 채워지고 대기자가 300명에 이를 정도였다. 과거 우리가 프랑스문화원의 강좌를 들으려고 줄을 섰다면 이제는 한국문화원 앞에 외국인들이 기다리는 광경을 보고 있다. 늘 우리가 외국 팝가수에 열광하는 것에 익숙하다가 프랑스와 영국 젊은이들이 우리 가수를 보려고 공항과 공연장에 몰려드는 광경을 목격한다. 이게 경이(驚異)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현실은 딱 여기까지다. 한국의 주류 문화예술이 외국인의 가슴을 파고들고, 비주류 예술이 솟아나기 위해서는 돈이 돌아야 한다. 문화재정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화려한 청사진은 곧 빛이 바랠 수 있다. 돈은 필요할 때, 그리고 제때 써야 한다고 했다. 문화예술의 경우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