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는 이등병으로, 이등병은 병장 앞에서 눕도록…

입력 2011.07.21 13:12 | 수정 2011.07.21 22:53

신임장교 6명이 이등병으로 위장해 병사들과 함께 내무반에서 생활한 '소대장 이등병 체험'을 마치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형·박종훈·김지수·이상혁·김민규·정필조 소위./출처=육군 제공

대한민국 이등병’은 요사이 관심의 최전선에 서 있다.
 
잇따른 병영 사고 탓에 ‘소위가 몰래 이등병으로 잠입해보자’는 실험에서, ‘이등병이 병장 앞에서 눕도록 놔둬 보자’는 시도까지 결코 평범할 수 없다. ‘이등병의 두 얼굴’은, 모두가 ‘군인 가족’일 수밖에 대한민국에게 시리게 다가온다.
 
#1 6월말 경기도 양평군 20사단에 배치돼 교육을 받고 있던 이재형(24) 소위 등 신임 장교 6명은 교육이 끝나갈 때쯤 사단본부로 불려갔다. 사단장 나상웅 소장은 이들에게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부대 진단’을 하라고 지시했다. 장교 교육만 받았던 이 소위는 갑자기 이등병 계급장이 달린 전투모를 쓴 자신을 보자 낯설었다. 하지만 ‘이참에 병영 문화를 직접 느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매주 금요일 20사단 신병 교육대에서 신병이 배출되는 것에 맞춰, 지난 15일 이들 6명도 다른 이등병과 똑같이 물품을 지급받고 사단 내 여러 부대로 배치됐다. 작전은 비밀스럽게 진행됐다. 이들 6명은 다른 사단 신병 교육대 출신으로 위장됐고, 이 사실은 사단장, 사단 인사참모, 그리고 이들 6명의 소위만 알고 있었다. 일선 부대 지휘관들도 이 사실을 몰랐다.
 

3박4일 동안 이등병 생활을 했던 이재형 소위(24·앞줄 왼쪽)가 전역병과 함께 내무실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출처=육군 제공
자대에 배치되자 멘토 선임병이 이 소위를 반갑게 맞았다. 이 소위를 매점(PX)에 데려간 멘토는 음료수 등을 사주면서 “식사할 때 선임보다 빨리 먹어야 한다” 등의 부대 문화를 하나 하나 설명했다. 이 소위는 내무반에서 전역하는 선임과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이 소위보다 나이가 어렸던 전역병은 “형, 잘 지내요”라고 이별 인사를 했다. 이 소위는 “이등병인 것처럼 보이려고 사진 찍을 때 더 ‘각’을 잡았다”고 말했다.
 
나흘간의 사병 체험을 한 이들은 지난 20일 20사단 대대장 이상 지휘관 50여명 앞에서 체험담을 발표했다. 사단 관계자에 따르면 6명 모두 “처음 자대에 배치받았을 때 이등병으로서 긴장되고 두려웠다”면서 “선임들이 세세한 것을 챙겨줄 때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말을 하지 않으면서 힐끔힐끔 쳐다보는 상병·병장 선임도 있었다고 한다. 선임병이 담배를 피우면 비흡연자인 후임병도 선임을 따라 나가야 했다. 이 소위는 “선임을 보면 경례를 하기 위해, 담배를 피울 때는 왼손만 허용됐다”고 말했다. 다른 소위는 “내무실에서 새로 온 이등병 환영 ‘과자 파티’가 열렸는데, 남은 과자는 이등병이 모두 먹어야 했다”면서 “지금까지 먹었던 과자보다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억지로 먹으려니 힘들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위는 “이번 경험을 통해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병사들과 최대한 많이 접촉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사단 관계자는 “최근 부대 내 구타·가혹행위가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병사의 입장에서 부대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동안(童顔)의 신임 장교 6명을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사단 관계자는 “이번 실태 조사 결과, 생각지도 못한 병영 문화들이 아직 상당히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부대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한 다음, 병영 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출·퇴근 개념을 도입해 병영 생활을 개선한 강한석 육군 9715부대장(소장). 그는“출 ·퇴근제 도입 후 1년 만에 각종 사고가 40%나 줄었다”고 말했다. /육군 제공

#2 강한석 육군 9715부대장(육사 34기·소장)은 군내에서 '병영 문화 개선 전도사'로 불린다. 일과 후에도 긴장의 연속인 병영에 출·퇴근 개념을 도입하는 등 파격적인 병영 생활 개선책을 실행에 옮겨 부대 내 사건·사고를 크게 줄이고 강한 부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해병대 2사단 총기 난사 사건 등 잇단 사건·사고로 군내 구타·가혹 행위가 문제가 되면서 그의 '병영 실험'이 주목을 받고 있다. 강 소장은 20일 본지(本紙)와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훈련이 강해서 힘든 군대가 아니라 (내무) 생활이 힘든 군대라는 점과 악습(惡習)을 군기로 착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의 병영 출·퇴근제 도입 실험은 2007~2009년 백두산부대장(사단장) 시절과 1년 전 9715부대장에 취임한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출·퇴근제는 훈련 등 하루 일과가 끝난 뒤 내무반(생활관)에 돌아오는 것을 직장 퇴근과 같은 개념을 적용,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작업이나 잔심부름을 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대 병장이 이등병에게 PX에서 음식물을 사오라고 시키거나 이등병이 집에 전화하러 갈 때 선임병에게 보고할 필요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강 소장은 "출·퇴근제 도입 후 이등병도 병장 앞에서 누워서 책을 볼 수도 있게 됐다"며 "이 제도를 도입한 뒤 1년 만에 9715부대는 전에 비해 폭행·폭언 등 각종 사고가 4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부대 사정상 일과 후에 부득이 작업을 시켜야 할 경우 '마일리지제'를 적용, 작업을 한 만큼 외출·외박 등으로 보상했다.
 
병장 등 기득권층의 반발 때문에 진통도 컸다고 한다. 지난 1년 동안 후임들에게 폭언·구타 등을 한 선임병 등 병사 280여명을 징계했다. 새 제도 도입에 대해 "군대 망친다"고 반발하며 부하들을 강압적으로 대한 부사관 20명을 징계했고, 이 중 문제가 심각했던 5명은 전역까지 시켰다. 강 소장은 "과거엔 단순 징계로 넘어갔던 것도 강하게 조치했다"며 "이제는 정착 단계에 들어가 징계보다 상을 많이 준다"고 말했다.
 
병장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당근'도 제시됐다. 새 제도에 잘 따르는 모범 병장은 주말에 부대 밖에 있는 PC방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외출·외박을 내보내 스트레스를 풀도록 한 것이다.
 
강 소장은 출·퇴근제 등이 군 기강을 흐트러뜨리고 약한 군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관련해선 "백두산부대장 시절 새 제도를 도입한 뒤 이등병 62명이 천리 행군에 자원해 완주(完走)하는 등 장병들이 오히려 더 강해졌다"며 "병영 내 악습은 일제시대의 잔재인데 일본 군대에서는 없어지고 우리에게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세대 장병은 간섭을 싫어하는데 군의 잘못된 서열 문화는 모두 간섭하는 것이고 신세대 장병은 여기에 적응을 못 한다"며 "우리는 훈련장에서 군기를 찾아야 하는데 내무생활에서 군기 찾는 게 문제다. 생활에선 에티켓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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