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악몽… 피해자 17가족 세상과 인연 끊고, 3가족은 풍비박산

조선일보
  • 최종석 기자
    입력 2011.07.18 03:07 | 수정 2011.07.18 04:03

    여성·부유층 노인 등 20명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구속 7년
    숨진 노점상 형제 2명 자살 또다른 동생은 정신질환, 아내는 아이 데리고 잠적
    일가족 잃은 60대, 3년간 사람 한 번 안 만나… 강력 범죄 피해자 10만명 사회가 관심 가져야 할 때

    지난 13일 찾은 서울 성동구 도선동 안모(53)씨 집은 향 냄새가 진동했다. 20㎡ 크기의 거실은 안씨가 살인마 유영철(41)을 떠올릴 때마다 내던져 깨진 그릇과 서랍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안씨는 그 옆에 형제들의 사진을 세워 놓고 붕대를 감은 발을 떨며 소주 석 잔을 올렸다. 20㎝ 길이의 식칼이 거꾸로 꽂혀 있었다. 그는 7년째 숨진 형제들 제사를 지내고 있다. "밤마다 형제들의 목소리가 들려 한숨도 못 자요. 엊그제도 자살하려고 2층 집에서 뛰어내렸는데 발만 다쳤어요. 그전엔 지하철역에서도 뛰어내렸는데 이놈의 질긴 목숨이…." 말을 잇지 못하는 그에게서 2004년 현장 검증 때 직접 유영철에게 복수하겠다고 흉기를 들고 덤비던 당당한 체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수염은 덥수룩하게 아무렇게나 길렀다.

    18일은 여성들과 부유층 노인 등 20명을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검거를 경찰이 공식 발표한 지 만 7년이 된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아직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회장 이용우)가 지금까지 피해자 20명의 유족들을 수소문했지만 연락 가능한 가족은 셋뿐이었고 17가족은 소재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 이용우(62) 회장은 "통상 살인 사건 피해자들을 추적해보면 주변에 주소나 연락처를 남기지 않고 숨어 살기 때문에 허탕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어렵게 찾아내도 '제발 날 좀 놔 달라'며 스스로 사회와 격리되길 원할 정도로 피해자들은 지독한 정신적·경제적 아픔을 안고 산다"고 했다. 그렇게 힘겹게 사는 강력 범죄 피해자들이 전국에 10만여명은 된다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살인마 유영철의 피해자 가족인 안모씨는 사건이 생각날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집기들을 던진다. 안씨의 집 거실은 그런 물건들로 가득차 있었다. 안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에 아직도 정상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안씨는 서울 황학동에서 노점을 하던 큰형 재선씨를 유영철의 손에 잃었다. 유영철은 2004년 4월 재선씨를 살해한 뒤 불태웠다. 재선씨 일을 돕던 둘째와 막내가 그 충격으로 잇따라 자살했다. 형수는 유영철이 다시 찾아올까 무섭다며 조카를 데리고 떠난 뒤 소식이 없다. 안씨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어 범죄 피해자 심리 치료 기관인 '스마일센터'를 다니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집안의 원수 유영철을 간절히 죽이고 싶었는데 이제는 피해자인 우리를 내버려 둔 사회가 더 원망스럽다"며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종업원 30명 규모의 제조업체를 운영했던 고모(69)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고씨는 서울 구로동 33㎡의 조그만 오피스텔에서 혼자 산다. 유영철 손에 노모와 아내, 4대 독자를 잃었다. 유영철은 2003년 10월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살던 한 변호사의 집에 들어가려다 실패한 뒤 대신 앞집에 살던 고씨네 일가족을 살해했다.

    그 뒤 3년 동안 고씨는 아무도 만나지 않다가 한 수녀의 권유로 '용서'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살아남은 딸들도 그를 찾아오지 않는다. 왜 흉악범을 돕는 일을 하느냐는 원망 때문이다. 고씨는 "내가 공연한 짓을 한 것 같다"고 후회하고 있다. "생명은 소중하지만 유영철은 죽어 마땅해요." 그는 지금도 그 끔찍한 장면이 자꾸 떠올라 "죽지 못해 산다"고 했다. 중증 암에 걸려 수술을 해야 하지만 월세 내기도 벅찬 상황이다.

    마사지 일을 하다 살해된 여성 한모씨의 남동생은 대리운전을 하며 조카 2명과 치매에 걸린 모친을 누나 대신 부양하고 있다. 36세지만 아직 결혼할 여유가 없다. 그는 "조카들은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해 유영철을 또 거론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1심에서 유영철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황찬현 대전지법원장은 "이제는 우리 사회가 범죄 피해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2005년 6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유영철은 서울구치소 독방에 7년째 수감돼 있다. 이곳에서 TV도 보고 운동도 한다. 교정 당국 관계자는 "유영철이 자살하거나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현재 전국에 수감 중인 사형수는 60여명. 정부는 1997년 12월 사형수 23명의 사형을 집행한 이후 14년째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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