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위대한 승리] IOC위원 가족까지 꿰뚫어… '걸어다니는 IOC사전'

조선일보
  • 민학수 기자
    입력 2011.07.09 03:01

    [더반의 신화를 만든 사람들]
    오지철 유치委 부위원장

    오지철 유치委 부위원장.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한국 스포츠의 빛나는 순간인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때마다 모두 실무 담당자로서 현장에서 발로 뛴 사람이 있다.

    오지철(62)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부위원장은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한국이 나고야를 꺾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할 때 대한체육회 국제과장이었다.

    당시 IOC 위원들의 특징과 취미, 가족 관계까지 꿰뚫고 있는 그는 유치위원회에서 '걸어다니는 IOC 사전'으로 통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8일 유치단과 함께 귀국한 그는 "이명박 대통령부터 김연아 선수에 이르기까지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라는 절박함 속에서 유치 활동을 했다"며 "30년 전과 마찬가지로 온 국민이 힘을 모은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아공 더반에서 IOC 위원들을 만날 때마다 그를 배석시켰다고 한다. 30년 넘게 IOC 위원들과 접촉해온 그의 경험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평창이 두 번 실패할 때도 모두 현장에 있었다. 2003년 체코 프라하 총회에서 밴쿠버에 질 때 그는 문화관광부 차관이었고, 2007년 과테말라시티 총회에서 소치에 역전패를 당했을 때는 유치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그는 "아쉬운 두 번의 역전패를 통해 평창은 이번에 올림픽 유치사상 최다인 63표를 얻을 수 있는 힘을 길렀다"고 했다. 그는 명분과 감성을 적절히 조화시킨 전략을 통해 평창이 동계스포츠의 오랜 전통을 지닌 뮌헨과 안시를 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이란 슬로건을 통해 그동안 유럽과 북미 지역에 국한됐던 동계올림픽을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로 확산시키자는 명분이 통했다는 것이다.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뮌헨 대세론'이 팽배했던 IOC 내부 분위기가 올해 초 평창 실사 이후 바뀌기 시작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평창이 이전의 약속을 모두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 부위원장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약속대로 올림픽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동시에 경제적인 올림픽으로 지역 발전까지 이루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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