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정병선의 視角(시각)] '제2의 도전' 나선 고산

조선일보
  • 정병선 기자
    입력 2011.07.09 03:03 | 수정 2011.07.09 14:55

    벤처창업 컨설턴트로… 우주인 고산, 새 우주 찾다

    '비운의 우주인' 고산(高山·35)이 돌아왔다. 이번엔 우주인이 아닌, 벤처기업 창업 컨설턴트로서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로 유학을 떠난 지 1년 만이다. 그는 6일 서울 캐피탈호텔에서 12개국에서 모인 해외교포 대학생과 국내 대학 이공계 학생 120명을 상대로 열강했다. 고씨는 "나의 인생은 늘 도전이었다"며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말고 도전하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한국 최초의 우주인 탑승자가 된 뒤 우주선 발사 한 달을 앞두고 전격 교체되는 좌절을 맛봤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창의와 열정의 유전자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우주인 좌절 이후 3년 동안 많은 갈등과 변화를 겪었을 텐데.

    "광장에 나온 기분이다. 사람과 같이 사는 느낌을 갖는다.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국수적인 입장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정말 강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국내에서 400회 강연을 했다. 서울과 수도권만 벗어나면 채워나갈 것이 너무 많더라. 청소년들에게 많은 꿈을 주고 싶었다. 나는 더 많은 것들을 추구하고 도전하고 있다. 국민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다. 케네디스쿨 유학을 결정한 것도 이번에 벤처창업 지원행사를 한 것도 내 끝없는 도전의 과정이다. 우주인 배출 사업이 단발성 행사처럼 끝나 아쉽다. 피겨 김연아 선수가 동계올림픽에서 우승한 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선 것처럼 우주인도 우리 우주산업 발전에 기여해야 할 텐데…."

    ―이번 행사는 어떤 자리인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주최로 일주일 동안 열리는 대학생 창업 지원 포럼이다. 공식 명칭은 '2011 Young Generation Forum'이다. 참가자들이 제시한 30개의 창업 아이디어 중 12개를 선정해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도록 했다. 또 최종적으로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선정해 창업 지원을 하고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기회를 통해 기업가 정신을 발현시킨다. 창조적인 발상을 하게 하고 당장의 두려움을 떨치며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뜻밖이다.

    "케네디스쿨 입학하기 전 싱귤래러티(Singularity) 대학에서 10주 동안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세계 유명인·대기업가 자제들이 모여 '창업'이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첨단 과학기술과 기업가 정신을 접목해 실제 창업까지 하는 미래학·융복합 프로그램이었다. 40개국에서 80명이 모였다. 4주는 바이오·나노·컴퓨터 사이언스 전문가들이 집중적으로 교육했다. 첨단의 첨단만 경험했다. '첨단은 미래고, 미래는 시장'이라는 논리였다. 미래 기술을 통해 미래 시장을 상상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됐다. 4주 동안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찾아가 창업과정과 기업 활동도 보았다. 8주와 나머지 2주 동안 연구결과를 묶어 2~3개의 창업 아이디어를 내면 벤처캐피털이 바로 지원을 약속했다. '아! 이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과학정책의 고민 중 하나가 이공계 기피현상과 이탈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프로그램을 한국에 도입하면 이공계 학생들에게 탈출구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다. 케네디스쿨 다니면서도 줄곧 이공계 학생들을 위한 네트워크 구성과 창업에 관심을 가졌다."

    고산의 꿈은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는 정책통이 되는 것이다. 우주인으로 선정돼 받았던 러시아에서의 실전 훈련과 우주개발 선진국 미국에서 더 많은 행정 경험을 쌓아 과학정책을 주도하는 리더가 되는 것이 목표다. /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싱귤래러티 대학이란 어떤 곳인가?

    "싱귤래러티 대학은 세계적인 발명가 겸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이 창립했다. 샌프란시스코 근처 나사(NASA)의 에임즈 리서치파크에 있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 분위기가 우리 청년들과 너무 비교가 되더라. 바에 가서 아무하고나 얘기해도 사업모델을 갖고 있었고, 사업실패한 친구들도 실패 경험담을 자연스럽게 얘기하더라. 고민 끝에 지난 2월 사단법인 '타이드(TIDE) 인스티튜트'를 만들었다. 싱귤래러티 대학 과정을 모델 삼아 한국형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교과부·중기청을 방문해 설명했는데 모두 호평했다. 이번 포럼은 그 첫 작품이다. 프로그램명은 '스타트업 스프링보드 48'이다. '스타트업'은 벤처의 요즘 표현이고, 48시간 안에 도약대에 올릴 만한 신속한 창업 프로그램을 구축하라는 의미에서다."

    ―하필이면 국제문제 연구로 유명한 케네디스쿨로 유학 간 이유는.

    "나는 원래 인지공학을 한 사람이다. 그런데 우주인에 선정되면서 시야가 바뀌었다. 우주인은 먼 곳을 향해 모험을 떠나는 사람이다. 우주인이 되면서 국민들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다. 어떻게든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도화지에 내 그림 그리는 것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남의 도화지에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러시아에서 우주인 훈련을 받으면서 국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다. 우리나라 전반적인 과학기술 정책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국제관계 분야도 배우고 싶었다. 국가 간 협력관계에 따라 과학 프로젝트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우주인 좌절 후 3년
    美유학 전 400번 강연… 도화지에 내 그림만 그렸는데
    이젠 남의 도화지에도 그림 그릴 수 있다고 생각

    첨단은 미래, 미래는 시장
    美 싱귤래러티大 창업프로그램 참여
    한국에 도입하면 이공계 탈출구 되겠다 생각

    '우주인 교체' 이젠 말할 수 있다
    "우주비행 방해 안될 정도만 한국인 훈련생 가르친다"
    대한민국 1호 우주인을 우주 관광객 취급하기에 열람 불허 교재 보다 발각

    ―미국 생활은 어땠나.

    "관심분야인 과학정책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많았고 인간적으로 성숙해진 기회였다. 사고도 자유로워졌다. 가장 큰 소득은 우리나라 학생들과 외국 학생들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는 것이다. 요즘 케네디스쿨에서는 교수들과 학생들의 대화에 한국이 자주 오르내린다. 전쟁을 극복하고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한 나라, 민주화를 이룬 나라로 자주 언급되더라. 부모님 세대는 산업화를, 선배 세대는 민주화를 이룬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럼 우리 세대는 뭐냐. 우리는 뭘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역동성을 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도전하고 창업하는 기업가 정신이 깊게 다가왔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벤처 창업에 정책적으로 접근하는 법을 적극적으로 공부했다. 케네디스쿨이 있는 보스턴과 서울 그리고 교포들이 사는 해외 지역을 중심으로 한인 네트워크 구성하고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싶다."

    ―한국 청년으로는 드물게 러시아와 미국 생활을 동시에 했다.

    "며칠 전 대학 산악부 선배를 만났는데 사하라 사막 마라톤대회에 출전한다고 하더라. 주최가 어디냐고 하니 미국이라 했다. 미국에서는 밀어붙이는 정신, 개척정신, 창조적인 삶이 느껴진다. 러시아에서는 대부분 군부대에 있었다. 규율은 강했지만 군인들은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고 일 처리도 늦었다. 민간인들과의 교류는 없었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의 정서는 우리와 비슷했다. 교수들은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려고 했다. 우주인 친구들과 교관들이 항상 고마웠다. 아직도 당시 통역관이었던 친구와 메일을 주고받는다."

    고산과의 대화는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시면서 계속됐다. 우주인 도전에 나섰던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선정됐다가 발사 한 달을 앞두고 교체된 사정도 듣고 싶었다.

    고산이 한국 최초 우주인으로 선정돼 러시아 가가린우주센터에서 훈련받을 당시 모습. / 로이터
    ―이젠 우주인 교체의 비사를 밝힐 수 있을 법하다.(고산에서 이소연으로 우주인 탑승자가 바뀔 때는 양국 정보기관 사이에 수차례 신경전이 있었고 정보요원들의 맞추방 사태도 발생했다.)

    "2008년 2월 러시아 모스크바 '즈뵤드니 고로도크(스타시티)'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 방에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요원이 들이닥쳤다. 내 방을 뒤져 책 한 권을 찾아냈다. 비행 단계별 우주선 조작법 등이 담긴 비행교재였는데 엔지니어급 이상 우주비행사만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단순 '비행 참가자'로 분류된 나에겐 열람이 불허된 책이었다."

    그 일이 발생한 뒤 러시아는 한국 정부에 "고씨가 규정을 위반했으니 우주인을 교체하라"고 요청했다. 한 달 뒤 탑승 우주인 자리는 예비 우주인 이소연(33)씨로 바뀌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고산이 우주 기술을 빼오려 했다는 '스파이설(說)', 여성 우주인 배출을 위해 희생됐다는 '희생양설', 외교 문제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 했다는 FSB의 '공작설' 등이 제기되기도 했다.

    ―왜 교체됐다고 생각하나.

    "훈련 중 하루는 러시아 교관이 내 질문에 이런 말을 했다. '우리의 한국 훈련생 교육 목표가 뭔지 아느냐. 우주선 날아갈 때 다른 사람들(러시아 우주인들)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만 가르치는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소유즈 우주선 조종석에는 세 명이 나란히 앉는다. 가운데는 선장, 왼쪽은 엔지니어, 오른쪽은 보조 엔지니어 혹은 단순 비행참가자의 자리다. 고씨 좌석은 선장 오른쪽, 그것도 보조 엔지니어도 아닌 단순 비행참가자로 분류됐다. 대한민국 1호 우주인으로 온 국민의 기대를 짊어졌던 그였지만 러시아 훈련센터에서는 '관광객' 대접을 받은 것이다. 끓어올랐다고 했다.

    "적어도 내가 타고 가는 우주선이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날아가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달 동안 러시아어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한 다음 어렵사리 훈련센터 스태프로부터 문제의 교재를 빌릴 수 있었다. 선택의 순간이었다. 물론 가만히 있었으면 (우주에) 갔다 왔을 거다. 그냥 우주관광객으로."

    ―우주인의 꿈은 접었나.

    "우리 독자적인 기술로 만든 우주선의 선장이 되고 싶다. 하지만 당장은 우주보다는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고 싶다. 우주인과 로켓 발사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한 과학정책에 기여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 이제 우주를 가는 것은 꿈이 아니다. 돈 있으면 갈 수 있다. 어떻게 가느냐가 문제다. 우주인은 과학기술의 꽃이어야 한다. 꽃 밑에는 줄기와 뿌리가 있어야만 한다. 우주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나는 뿌리와 줄기를 갖춘 꽃이 되어 가고 싶다."

    -나로호의 실패에도 관심이 많을 텐데.

    "우주인에 관한 것은 내가 전문가다. 하지만 로켓분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두 차례 실패에서 보듯 우주기술의 독자개발이나 기술이전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1단 로켓이 메인인데 기술이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항공우주연구원에서 나로호 실패 이전에도 우리 기술로 발사체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두 차례의 발사 실패로 우리 로켓개발팀이 더 부각될 것으로 본다.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는 국가 간 우주기술 이전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외교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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