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평화의 댐' 사기극과 진실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1.07.07 23:33

    평화의 댐에는 '김대중' 사진은 있고 '전두환' 이름은 없다 "북쪽 눈치를 보면서 몰래몰래 쌓았다, 정말 희극과도 같았다"

    최보식 선임기자
    강원도 화천군에 들렀을 때, '평화의 댐'까지 굳이 올라간 것은 직업적 관심 때문이었다.

    1986년 10월 당시 5공 정권은 "북한이 서울의 3분의 1을 삽시간에 물바다로 만들 수 있는 최대 저수능력 200억t 규모의 금강산댐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그 댐을 터뜨리면 여의도 63빌딩 허리까지 물이 차고 국회의사당은 지붕만 보일 것이다. 수공(水攻)이다! 대응 댐 건설을 위한 대대적인 성금 모금이 시작됐다. 총 모금액은 661억원. 평화의 댐은 1년 만에 초스피드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북한은 금강산댐 공사를 중단했다. 김을 빼버린 것이다. 수공 위협설은 '정권 후반기에 시국안정과 국면전환을 위해 조작한 것'으로 결론났다. 돼지저금통을 들고 줄을 섰던 코흘리개까지 농락한 '정권사기극' 현장을, 이제야 내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평화의 댐까지는 육로도 있지만, 파로호(破虜湖)와 연결돼 있어 보트를 타고 갔다. 댐은 방벽처럼 협곡 사이를 막고 있었다. 댐 상부에는 하얀 페인트로 쓴 '80m' '125m'가 보였다. 높이 표시는 알겠지만, 숫자의 숨은 뜻은 몰랐다. 댐의 옆기둥처럼 서 있는 산의 발치에는 터널 4개를 뚫어놓았다. 물밀듯 밀려 내려오다 댐에서 막힌 물들이 빠져나가는 배수로다.

    댐 전망대는 관광지로 꾸며져 있었다. 세계 각국의 탄피를 녹여 만든 '평화의 종(鐘)'은 500원을 내면 직접 칠 수도 있다. 종 머리의 비둘기상(像) 한쪽 날개는 남북통일이 되는 날 붙이기 위해 잘라놓았다. 다른 쪽에도 '평화'에 초점을 맞춰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동판 사진과 핸드프린팅이 전시돼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2001년 유엔이 수상자로 선정됐을 당시 유엔총회의장이었던 한승수 전 총리도 그 일원이다.

    댐 주위를 둘러봐도 찾을 수 없는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흔적이다. 공사 연혁(沿革)도 없었다. 이 댐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고,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그런 안내문도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평화의 댐에 '김대중'은 있는데, '전두환'은 없다는 게 묘했다.

    이 댐이 누구의 작품인지 세상이 다 알지만, 정확하게는 80m 높이까지만 5공의 작품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이 댐에 대한 청문회와 특별감사가 시작됐다. '정권안보용'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은 이때부터다. 대부분 우리의 기억도 그 이미지에만 멈춰져 있다.

    하지만 화천군에서 나고 자라서 그 지역 공무원이 된 정갑철 군수나 김세훈 관광정책과장은 직접 겪은 사실을 말했다.

    "1999년 여름 700~800mm의 대폭우가 쏟아졌다. 화천댐은 넘치기 직전이었다. 그때 평화의 댐이 막아주지 않았다면 화천댐은 무너졌고 연쇄적으로 북한강 수계(水系)의 다른 댐들도 무너졌을 것이다. '서울 물바다'가 현실이 될 뻔했다. 1996년 홍수 때도 그랬다. 평화의 댐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워낙 욕을 먹으니까 입을 다물었다."

    2002년 초 공사를 재개한 금강산댐에서 초당 206t씩 흙탕물이 쏟아져 내렸다. 19일에 걸쳐 3억5000만t의 물폭탄이 터진 것이다. 선두에서 막고 있던 평화의 댐은 무너질 뻔했다. 방류 중단과 공동조사를 요구했으나 북한은 응하지 않았다. '햇볕정책'의 김대중 정부 시절 일이었다.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는 평화의 댐을 보강하고 더 높이기로 결정했다.

    좌파 정권도 평화의 댐 존재 이유를 알았다. 다만 5공의 산물이기 때문에 숨기고 싶었다. 댐을 더 높이는 역할은 정말 맡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수공(水攻)이 될 수 있음을 알았기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실제 댐 높이를 125m로 더 올린 것은 노무현 정부 때다. 국내 댐 중에서 가장 높은 소양강댐을 추월했다. 5공 때보다 더 높일 때의 사업비가 훨씬 많았다. 거대한 역사(役事)였으나, "북쪽 눈치를 보면서 몰래몰래 쌓았다. 정말 희극과도 같았다"고 지역 공무원들은 기억했다.

    댐 완공식에는 국무총리가 참석하는 걸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주무장관조차 내려오지 않았다. 수자원공사 사장과 원주국토관리소장만 참석했다. 이런 연유로 아무런 기록도 하지 않았다. 기록이 없으면 '숨겨진 사실'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진상은 더욱 아득해질 것이다.

    생전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기에 와본 적이 없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2009년 처음으로 평화의 댐을 구경했다. 그의 흔적은 없었지만, "내가 잘못 만든 댐이 아니구먼" 했다고 한다. 당초 금강산댐 규모를 200억t으로 과장(誇張) 혹은 판단 미스를 한 것을 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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