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기말고사를 치른 서울대 로스쿨의 인터넷 게시판에선 난리가 났다. 이날 검찰실무 과목 시험을 본 학생 10여명이 "다른 학생 4∼5명이 답안지를 10분 정도 늦게 내 피해를 봤다"며 거세게 항의한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교수에게까지 '학사 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시험장 관리부터 철저히 하라'고 항의 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실무 시험은 수사 기록 등 80여 페이지를 읽고 기소·불기소 의견에 따라 20여개의 답안을 써내는 것이어서 시험시간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학생들이 "시험을 10분 더 봤으면 학점이 바뀔 수도 있다"고 분통을 터뜨린 것이다.

서울대 로스쿨 취업박람회… 지난달 29일 서울대에서 열린 로스쿨 취업박람회에서 한 참가자가 면접실로 들어서며 인사하고 있다. 로스쿨 학생들은 취업 경쟁은 물론이고 학교생활에서도 치열한 성적 경쟁을 벌인다.

서울대 로스쿨에서 시험 때문에 이런 소동이 벌어진 것은 처음이다. 놀란 학교측이 진상 조사를 벌였고 결국 "시험 감독과 관련해 포괄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하는 선에서 사태가 진정됐다.

며칠 뒤에 치른 상거래법 시험에서도 답안지를 늦게 낸 학생이 나머지 학생들로부터 "공개 사과하라"는 압박에 시달린 끝에 담당 교수에게 사과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내년 로스쿨 1기생 졸업을 앞두고 로스쿨생들의 시험 분위기가 살벌해지고 있다. 로스쿨생들이 이처럼 학점 관리에 잔뜩 신경을 쓰는 이유는 내년 취업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위치에 서기 위해서다. 내년에만 로스쿨생 1500명과 사법연수원생 500여명이 변호사시장에 한꺼번에 나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된다.

한 서울대 로스쿨생은 "예전에는 자기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됐는데 경쟁이 치열해진다고 하니까 다른 학생들 시험 보는 것까지 챙겨봐야 한다"며 "학생들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로스쿨생은 "감독하는 조교보다 견제하는 동료들이 더 무섭다"고 했다.

다른 대학 로스쿨도 상황은 비슷하다. 시험을 앞두고 필기노트를 빌려주던 '미풍양속'은 거의 사라졌다. 정규 강의 대신 '틈새시장'인 계절수업을 신청하는 학생도 많아졌다. 정규 수업과 달리 평가 기준이 느슨하거나 '절대평가' 방식인 경우가 많아 학점 받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여름방학 중 미국법, 중국법 등 과목이 개설된 연세대는 한 과목당 수강료가 42만~62만원이지만 지난달 인터넷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정원이 마감됐다. 이화여대도 3학점짜리 한 과목을 들으려면 75만원이 들지만 등록 경쟁이 치열하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학생들도 늘었다.  서울대 로스쿨은 작년 한 학생이 학업 스트레스를 이유로 자살한 이후 올해부터 상담 전문가를 초빙해 1주일에 한 번 심리 상담을 받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몰리면서 상담을 받으려면 두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서울대측은 "하루 종일 상담을 해도 부족해 상담 횟수를 늘리거나 별도 상담실을 만드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서울대 로스쿨 노혁준 학생부학장은 "우수한 인재를 모아 놓고 학점에 따라 줄 세우기를 하면 다양한 법조인을 양성하려는 로스쿨의 도입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며 "과잉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법무부에서 일괄적으로 감독관을 파견하는 등 전국적으로 시험 조건을 표준화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