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의도 국회 보좌관들 사이에 '택시 괴담(怪談)'이 떠돌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지난 5월 초 한 국회의원이 늦은 밤 국회 앞에서 한 여성과 함께 술에 취한 채 택시를 탔다. 보름 뒤 그 의원은 택시기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택시기사는 "택시 안에서 했던 애정행각이 블랙박스에 다 녹화됐다.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동영상을 받아 본 의원은 자신의 얼굴이 또렷하게 나오는 화면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영상이 공개될 경우 도덕적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여겨 결국 택시기사에게 거액을 주고 사태를 무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났을 때 목격자를 찾지 못하더라도 원인을 규명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차량용 영상기록장치, 이른바 블랙박스가 개인 차량뿐 아니라 영업용인 택시와 버스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향후 모든 자동차에 블랙박스가 장착될 경우 교통사고는 15~30%, 연간 사망자 수는 800~1600명, 교통사고 비용은 1조5000억~3조원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장점이 많은 블랙박스이지만 여의도 정가에 내려진 '택시 경계령'처럼 논란도 빚고 있다. 일부 택시기사들이 차량 외부뿐 아니라 내부까지 촬영 가능한 블랙박스를 설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여성 개인택시 기사는 "난동을 피우는 손님들에게 내부가 녹화되고 있다고 말하면 금세 조용해진다"고 했다.
인터넷에선 술에 취해 택시 안에서 난동을 피우는 승객들의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쉽사리 찾을 수 있다. '진상 택시 승객'이란 이름의 블랙박스 영상에서 승객들은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그대로 노출되고 희화화된다. 블랙박스의 사생활 침해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는 '택시 내부 CCTV 설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은 승객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촬영된 영상정보를 운영자가 임의로 열람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제한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를 지키는 택시기사는 없다는 게 택시기사들의 전언. 행정안전부 개인정보보호과 관계자는 "현재로선 민간에 대해 강제할 수 없어 권고하는 수준"이라며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되면 사생활 침해 사례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오는 9월 30일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되면 택시 내부 녹음기능은 금지되고,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