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서울 주민투표가 분수령이다

조선일보
  • 김대중 고문
    입력 2011.06.27 23:37

    두달 뒤 무상급식 찬반 투표는 한국의 장래 결정할 사건인데
    한나라당 대선·당권주자들은 입 다물거나 딴지걸기에 바빠
    청와대도 주민투표에 거리 둬… 포퓰리즘에 침몰된 '콩가루집단'

    김대중 고문

    오는 8월 하순쯤 실시될 서울시의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는 긴 안목으로 볼 때 내년의 총선이나 대통령 선거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총선이나 대선은 4~5년 기간 '정치'의 향방을 가름하지만 주민투표의 결과는 오랜 기간의 장래에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최대 화두(話頭)는 지속적인 시장의 성장이냐 사회통합적인 복지냐다. 한마디로 곳간의 쌀을 걱정하면서 갈 것이냐, 아니면 우선 곳간을 털어 나누어 먹을 것인가다. 여기에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일부 가진 자들의 탐욕과 비리가 국민들을 화나게 하고 있는 점, 그리고 정책의 우선순위 및 균형에 관한 논쟁이 그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주민투표가 복지 포퓰리즘과 시장의 성장에 대해 "전반적인 가치의 방향을 설정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서울시 주민투표의 핵심이다.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는 "원래 반값·공짜·관용·배려 같은 포퓰리즘은 개인의 인생을 국가 집권자에게 모두 맡기는 가부장적 사회주의 정치이념에 뿌리를 둔 것이고, 보수정권의 기본적 가치는 정부 대신 국민의 자율적 의지와 품성이 사회의 질(質)을 형성한다는 민주적 개인주의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했다(문화일보 23일자 칼럼). 거창한 이론을 떠나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이 좋은 일이기는 하나 돈이 그럴 만큼 있느냐, 있다 해도 거기에 쓸 여지가 있느냐는 것으로 논점을 정리할 수 있다.

    주민투표에서 오 시장 측이 이기면 무상시리즈가 당장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 쏠림과 흐름에 제동이 걸리는 효과가 있다. 즉, "오늘 먹자고 내일 굶주릴 수 없다"는 논리가 우세한 것이다. 반대로 부결되면 시민들의 복지욕구에 대한 추세를 막기 어려운 상황이 온다. "나중에 삼수갑산을 가도 우선 먹고 보자"는 것이고 "장래에 우리 후세가 보상받는다는 보장도 없다"는 논리가 이기는 셈이 된다.

    서울의 결정이 전 국민을 대변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울시민의 구도가 전국 분포적이고, 도시화의 특성상 빈부차이가 더 심하며, 교육여건이 더 치열한 점으로 볼 때 서울시민의 의사는 무상복지 시리즈에 관한 한 전국적으로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논점에 대한 결정은 적어도 정치권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포퓰리즘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서울시의 주민투표는 국민들의 생각을 걸러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아주 시의적절하고 한번은 꼭 거쳐야 하는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나라당이나 야당의 유불리(有不利)를 초월한 문제이고 국민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서울의 주민투표를 둘러싸고 정치인들, 특히 한나라당의 대권주자나 당권주자들이 취하는 태도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어느 대권주자는 아무 의견도 내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있다. 어쩌면 공이 어느 쪽으로 튈지 그 결과를 보고 약방문(藥方文)을 쓰려는 기회주의적 처신인지도 모른다. 또 다른 주자는 야당지배의 서울시의회와 타협하면 될 것이라며 "굳이 그런 투표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뒤늦게 딴지를 걸었다. 대부분의 당권주자들은 서로 앞다투어 좌파 따라잡기에 여념이 없다. 이들은 주민투표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보이며 "그것은 그것이고 당권이나 대권은 별개"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은 한나라당이 시장경제, 건전재정, 기업활성화, 법치, 개인의 활성화를 정강으로 내세운 보수우파 정당임을 전혀 의식하지 않거나 고민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청와대도 서울의 주민투표에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집권당은 포퓰리즘에 침몰된 '콩가루 집단'으로 가고 있다.

    현실정치 측면에서 볼 때 서울의 주민투표에서 오세훈 시장 측이 이기면 오 시장의 주가는 상당히 올라 대권가도에 변수가 될 수 있고 '무상, 반값'에 찬동한 한나라당 지도부, 특히 서울출신들은 사퇴해야 마땅하다. 오 시장이 지면 오 시장의 정치적 장래는 불투명해 시장자리를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내년 총선과 대선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온통 복지 포퓰리즘의 전시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의 핵심관계자는 최근 일반의약품의 편의점 판매 허용 문제와 관련, "허용될 경우 일반 국민이 얻는 이익은 추상적인 데 비해 약사의 불이익은 아주 구체적이어서 선거에서 여당에 치명적"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무상급식도 재정과 균형의 문제는 추상적이지만 학부모의 실익은 구체적이다. 반값등록금도 마찬가지다. '추상'과 '실익(實益)'의 전쟁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 '오늘'과 '내일'의 싸움에서는 누가 이길 것인가? 서울시민은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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