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담았더니 비현실적이라고… 그게 北의 현실"

조선일보
입력 2011.06.27 03:06 | 수정 2011.06.28 14:00

북한인권 다룬 영화 내놓은 N. C 하이킨·김규민 감독
비현실적 제목 - 평화 상징한다는 꽃 '김정일리아'
시적인 느낌마저 드는 '겨울나비' 끔찍한 실상의 아이러니 담아
현실적 관객반응 - 아직도 이념·정치따라 北 해석, 사실 알면서도 외면하는 일 많아

북한의 인권 상황과 처참한 현실을 너무 현실적으로 다뤄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인 영화 두 편이 잇따라 관객을 만난다. 미국인 감독 N. C 하이킨(63)이 만든 다큐멘터리 '김정일리아'(김정일의 46세 생일을 맞아 만든 다년생 베고니아)는 요덕수용소를 체험한 강철환(조선일보 기자)씨 등 탈북자 12명의 증언을 통해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를 폭로한다. 2009년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상과 이듬해 체코 원월드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았다. 23일 개봉했다.

탈북자인 김규민(37) 감독이 연출한 '겨울나비'는 감독 자신이 북한에서 직접 보고 들은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굶주림에 시달린 모자(母子)의 참혹한 현실이다. "북한의 극단적 사회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생생히 보여준다"는 평이다. 다음 달 7일 개봉한다. 영화 개봉을 맞아 지난주 방한한 하이킨 감독과 김 감독이 23일 본지 주선으로 만났다.

―영화를 만든 계기는.

하이킨 "남편(번역가)을 따라 일본에서 열린 인권 콘퍼런스에 갔다가 강철환씨가 9세 때 북한 수용소에 간 얘기를 들었다. 그런 곳이 있는 것조차 몰랐다. 결코 그냥 둬선 안 된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내가 유대인이고 가족을 (나치)수용소에서 잃은 내력이 있어서 더 감정적으로 반응한 것 같다. 유대인들은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북한의 수용소 얘기를 듣고서 개인적인 책임을 느꼈다."

"한국 언론에서는 김정일이 중국에 가는 건 시작부터 끝까지 다 보도하면서 토끼풀만 먹다 죽은 북한 여자 애에 대해선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북한 사회, 그 중에서도 굶다 죽어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이킨 "그런 참혹함을 다룬 영화치고 '겨울나비'란 제목이 너무 아름답고 시적이다."

"영화를 만들 때 겨울에 태어나 얼어 죽은 나비 사진을 봤다. 봄이나 여름에 태어나 아름다움을 뽐냈어야 할 존재인데 시기를 잘못 타고난 거다. 영화에 나온 모자(母子)도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태어났으면 다른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김정일리아'라는 제목도 재밌다.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북한에 있을 때 품종 개량한 꽃은 김정일리아밖에 없는 줄 알았다."

하이킨 "(웃음) 원래는 강철환씨가 쓴 '평양의 수족관'과 '국경 감시자' 등이 영화 제목 후보였다. 그런데 웹서핑을 하다가 북한이 '김정일리아는 평화·아름다움·정의·지혜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는 걸 읽었다. 그런 단어들이 이런 끔찍한 곳에 쓰이다니 너무 웃기지 않나. 아이러니를 잘 표현하는 것 같아 제목으로 정했다."

다큐멘터리‘김정일리아’의 N. C 하이킨 감독(왼쪽)과 영화‘겨울나비’의 김규민 감독이 23일 본지 주선으로 만나 영화 제작 취지 등을 얘기하고 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다큐멘터리‘김정일리아’의 N. C 하이킨 감독(왼쪽)과 영화‘겨울나비’의 김규민 감독이 23일 본지 주선으로 만나 영화 제작 취지 등을 얘기하고 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관객의 반응은.

하이킨 "너무 정치적으로 본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 관객이 '한국에는 선전(宣傳)이 너무 많다. 정부도 언론도 거짓말을 하는데 왜 당신을 믿어야 하느냐'고 하더라. 일단, 난 저널리스트도 정치인도 아니고 아티스트다. 강철환씨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잘 알았던 것도 아니고 정치적 견해도 딱히 없었다. 내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기로 한 거다. 수용소에 있었던 탈북자들이 한 얘기들은 하나하나 다 진실로 와 닿았다."

"나도 마찬가지다. '겨울나비'를 본 사람이 나한테 '이건 실화일 수가 없다'고 했다. 황해북도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이라고 했는데도 '거짓말'이라면서 그냥 돌아서더라. '김정일을 때려죽이자'고 한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현실을 보여주려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하이킨 "나도 현실을 외면하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데 놀랐다. 북한이 남한을 먼저 공격한 걸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북한 정권이 이상해진 건 9·11 이후 부시 정부의 강경 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만났던 탈북자 중에서도 아무도 이야기를 안 들어주고 믿어주질 않으니까 이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

"여기(남한)선 좌·우로 갈라져 북한이란 단어를 자기 이익에 따라, 정치적 색깔에 따라 해석한다. 그래서 사실인 걸 알면서도 자기 이익이나 정치색과 맞지 않으면 말도 하지 말라는 거다. 한국이 갖고 있는 한계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10년 전(2001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와 지금의 분위기가 아주 다른 것 같다. 그땐 북한을 형제처럼 생각했다. 미운 짓을 하지만 동생이니까 그래도 아껴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웃처럼 생각해서 무관심하다. 통일은 영원히 안 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쉽다. 내 영화를 보고 몇몇 사람이라도 그동안 알고 있던 북한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도록 영화를 계속 만들 거다. 그게 최선의 방법이자 의무다. 대신 북한 관련 소재는 무겁고 부담스러우니까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에 담을 것이다."

하이킨 "한국에 다섯 번째 왔는데 정말 사랑하게 됐기 때문에 한반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리며 살기를 바란다. 난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이곳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외부인이다.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김 감독도 한국이 맘에 드나?"

"잊을 수 없는 경험 두 가지를 말해주겠다. 여기 오자마자 탈북자 친구의 결혼식에 가려고 당시 나를 담당하던 형사에게 전화로 알렸다. 그가 '그런 걸 왜 나한테 보고하느냐'고 하더라. 또 하나는 이곳에서 얻은 첫 직장인 진공청소기 공장에서 이틀 일하고 받은 5만원으로 쌀을 샀을 때다. 그때의 돈 봉투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자유가 있고 배고픔은 없다는 것만으로도 난 이곳이 눈물 나게 좋다."

☞N. C 하이킨은

1948년 미국 필라델피아 출생. 뉴욕 사라로렌스대학에서 무용과 연극을 전공하고 뉴욕 윌포드 리치 극단에 들어가 배우, 극작가로 활동했다. 1996년부터 파라마운트사와 디즈니사에서 TV시리즈 시나리오 작업을 맡았다. ‘김정일리아’가 장편 다큐멘터리 데뷔작.

☞김규민은

1974년 황해북도 출생. 리계순 대학을 다니다 1999년 단신(單身)으로 탈북해 2001년 한국에 왔다. 이듬해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 단편영화 ‘착각’ ‘모닝콜’ 등을 만들었다. ‘국경의 남쪽’ ‘타짜’ ‘포화 속으로’ 등의 연출부, ‘크로싱’의 조감독 등으로 영화 현장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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