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戰禍 속 졸업생에게" 김창숙 선생 친필 훈사 발견

    입력 : 2011.06.25 03:09

    成大 제자들 위해 쓰고 읽어

    6·25 전쟁 중이던 1953년 봄 성균관대 학장이던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1879~1962) 선생이 졸업생들을 위해 친필로 쓴 졸업식 훈사가 발견됐다.

    성균관대는 창립자인 김창숙 선생이 6·25 전쟁 휴전협정을 4개월 앞둔 1953년 3월 21일 성균관대 졸업생 65명을 위해 직접 쓰고 읽은 훈사를 최근 발견해 24일 공개했다. 당시 성균관대는 1953년 7월 서울로 돌아가기까지 부산의 천막교실과 임시건물에서 겨우 수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길이 2m38㎝ 긴 두루마리에 선생이 붓으로 쓴 훈사에는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전쟁과 민족의 미래에 대한 애끓는 심경이 담겼다. 선생은 "오랜 역사에도 일찍이 없었던 전화(戰禍)로 인해 국보적 존재인 성균관대학이 적비(赤匪)의 불구덩이에 날아간 것은 우리 교육계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커다란 손실"이라며 "남한땅 끝머리 부산 한 모퉁이의 쓸쓸한 임시 교사 밑에서 구차한 졸업식을 치르게 됐다"고 한탄했다.

    심산(心山) 김창숙 선생의 생전 모습. 그리고 그가 1953년 성균관대 졸업식 때 졸업생들을 위해 두루마리에 쓴 친필 훈사. /성균관대 제공
    또 "우리가 이 성대한 식전을 거행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저 38선 이북 전선에서는 우리 국군 장병 몇 백, 몇 천명이 총칼에 선혈을 뿌리고 사장(沙場)에 백골을 묻는 것을 생각해 보라"며 "우리가 홀로 이 안전한 후방에서 무슨 마음으로 술잔을 들어 환호하겠는가"라고 했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확실한 국가관을 당부했다. 훈사에서 "대한민국의 현실이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가를 날카로운 눈매로 살펴보라"며 "오늘날 우리 민족에게 하늘이 부여한 의무와 사명은 오직 살아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며, 죽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죽는다는 한결같은 길뿐"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교육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인 김창숙 선생은 조선시대의 성균관을 계승해 1946년 9월 대학을 세우고, 1946~1956년 초대 학장과 총장을 지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5적'의 참형을 요구하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8개월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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