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在美 국군포로 송환위원회의 北제소 마땅

조선일보
입력 2011.06.24 23:31 | 수정 2011.06.24 23:36

6·25전쟁 참전용사 및 국군포로 출신으로 구성된 재미(在美) 국군포로 송환위원회가 국제형사재판소(ICC)와 유엔인권위원회(UNHCR)에 지난 2월과 4월 각각 북한을 상대로 고소장과 진정서를 제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고소장과 진정서는 북한이 정전(停戰)협정에 따라 송환해야 할 국군포로 대다수를 송환대상에서 제외시켜 억류한 뒤 인권탄압을 해 왔다면서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500여명을 조속히 송환할 것을 촉구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때 유엔군 사령부가 유엔에 제출한 자료는 6·25전쟁 국군포로 및 실종자를 8만2000여명으로 추정했다. 북은 이 중 8300여명만 송환했다. 북에 억류된 7만명이 넘는 국군포로들은 '괴뢰군 포로'라는 딱지를 붙이고 불발탄 처리, 탄광의 발파공, 벌목공 등 위험하고 고된 작업을 강요받으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왔다고 생환 포로들은 증언했다.

1994년 조창호 소위를 시작으로 80여명의 국군포로가 자신 또는 가족의 힘으로 북을 탈출해 생환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정부가 구출해낸 국군 포로는 단 한 명도 없다.

얼마 전 미 하원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 재지정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북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기 위해 북이 충족시켜야 할 조건 중 하나로 국군포로 석방을 포함시켰다. 반면 우리 국회는 '국군포로의 생사확인 및 송환을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실효성도 없는 조항이 포함된 북한인권법마저 2008년 이후 4년째 야당 반대에 부딪혀 처리를 못하고 있다.

국군포로 김모(85)씨는 2008년 한 차례 탈북했다가 남쪽행에 실패한 뒤, 작년 4월 다시 탈북해 제3국 우리 공관에 8개월 동안 발이 묶였다가 올 초 꿈에 그리던 가족들과 다시 만났다. 생존한 국군포로들은 대부분 김씨처럼 80대 중반을 넘어서 눈을 감기 전 고향 땅을 밟아보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이 "국군포로는 모두 돌려보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만큼 공식적인 국군포로 송환은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다면 국군포로 개인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탈북 및 생환을 비공개적이고 은밀하게 지원할 수는 없는지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국군포로 생존자들에겐 이제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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