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통일임박론은 허상이다

조선일보
  •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입력 2011.06.22 23:01

김정일 정권 흔들려도 체제·국가는 존속할 수 있어
중국도 북한 붕괴 용납안해… 사실 판단과 주관적 소망 섞인
통일론은 객관적 인식 방해… 통일은 지루한 도정 될 것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청와대에서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고 단언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15기 간부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통일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언명한 것이다. 통일이 임박했다는 생각을 대통령만 하는 건 아니다. 한국 보수 최고의 경세가(經世家)인 박세일 선진통일연합 의장은 우리가 이미 "통일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확언한다. "북한에는 미래가 없을 뿐 아니라 분단의 평화적 관리가 가능한 시대도 아니므로 현상타파의 통일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북한 상황을 감안하면 임박한 통일에 대한 기대에는 자연스러운 측면도 있다. 요사이 유행하는 통일담론의 주창자는 보수인 경우가 많다. 이는 남·북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승리했고, 보수가 그 성공의 주체라는 자부심이 밑에 깔려 있는 흡수통일론으로 이어진다.

흥미롭게도 통일담론 변천의 역사는 일정한 패턴을 보여준다. 남·북의 국력경쟁에서 우위에 선 쪽이 공세적 통일론을 펴 온 것이다. 1970년대 초·중반까지 북한이 통일담론을 주도하고 한국이 수세적 태도를 취한 데 비해, 1980년대 들어서는 오히려 한국이 공세적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북이 체제 존망(存亡)의 위기를 겪은 1990년대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세일 의장의 통일임박론은 그 최신 버전인 셈이다.

그러나 사실판단과 주관적 소망사고(所望思考)가 혼란스레 뒤섞인 통일론은 냉정한 북한 인식을 가로막아 사태를 그르칠 수도 있다. 권력교체기에 들어선 김정일 정권이 이상(異常) 징후를 보이는 것이나 만성적인 북한 식량난은 분명한 사실이다. 화폐개혁 실패가 사회경제 부문에서 북한체제의 실패를 한층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기도 하다. 체제이완이라는 도전에 전대미문의 공포정치로 응전하는 김씨정권의 시대착오성도 악화되고 있다. 이 대목은 '사실판단'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어떤 '소망사고'가 통일임박론과 북한종말론을 부추기고 있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통일임박론은 '김정일 이후의 북한'이 후계자 김정은의 실권(失權)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제하고 김씨일문(一門)의 몰락이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 북한이라는 국가의 소멸로 연결된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수백만 인민의 대량 아사까지 버텨낸 북한의 내구성을 과소평가하는 생각이다. 김씨일문의 수령(首領)유일주의가 정권·체제·국가의 동일성을 아무리 강변한다 해도 정권과 체제, 국가는 일단 구별되어야 한다. 설령 김씨정권이 흔들리는 경우에도 변형된 형태로 사회주의 체제가 지속될 수 있고, 체제가 바뀐다 해도 북한이라는 국가는 존속할 수 있다. 정권·체제·국가 모두의 일괄붕괴를 상정하는 통일론의 첫째 전제는 지나치게 단순한 예단이다.

둘째, 통일임박론은 한반도 정세를 규정하는 외부요인을 소홀히 한다. 분단과 6·25 전쟁의 발발 자체가 한반도 내·외부의 역학관계를 반영했던 것처럼, 통일도 비슷할 것임은 필지의 사실이다. 김일성의 개전(開戰) 의지가 아무리 강력했어도 스탈린의 허락과 마오쩌둥의 개입 없이 전면전은 일어날 수 없었다. 통일의 가능성을 말할 때도 특히 중국미국이 중요한 건 물론이다. 세계경영을 미국과 다투게 된 G2 중국은 '사회주의 북한'의 붕괴를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중화제국의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태 때 거듭 드러난 중국의 북한 거들기는 그 단적인 증거다. 박세일 의장의 소망과는 달리 우리의 '통일의지'가 한반도의 이런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통일임박론은 허상(虛像)에 가깝다. 독일통일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것처럼 남·북통일이 '도둑처럼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반도는 독일이 아니다. 남·북통일은 지루한 힘겨루기와 일진일퇴의 도정이 될 개연성이 훨씬 큰 것이다. 어느 철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통일이라는 최종 심급(審級)은 결코 오지 않는다." 이는 물리적으로 통일이라는 사건이 영원히 발생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아니라, 한반도의 교착상태를 단칼에 풀 북한종말론 같은 '파천황(破天荒)의 통일'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통일을 방해한다는 역설적 표현이다. 결국 성급한 통일론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반도의 평화를 뿌리내리고 시민적 자유와 통합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게 오히려 통일로 가는 지름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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