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군의관들의 하소연

입력 2011.06.16 22:52 | 수정 2011.06.17 05:40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최근 군(軍)의료 문제가 불거지면서, 전·현직 군의관들의 하소연과 의견이 담긴 이메일이 기자에게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는 요즘도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소 황당한 사연들이 많다.

"지휘관이 건강검진 받는 날이니까 진료 보지 말고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직속상관인 대령의 친척이 민간병원에 입원했다며, 자신이 문병 갈 때 수행하라는 지시도 받았습니다." 한 군의관은 지휘관이 키우는 애완견에 예방접종을 하라는 '명령'도 받았다고 했다.

군의관들이 말하는바 일선 부대의 진료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우리 사단 의무대의 X-ray는 항상 왼쪽 폐가 하얗게 나와서 도저히 진단이 불가능했습니다. 수리를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새로 하나 보급받자고 의무대장(의무행정장교)에게 건의했지만, 내구연한(耐久年限)이 안 지나서 그렇게 하면 문책당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장 난 X-ray를 계속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군의관의 하소연은 이어진다. "반면에 쓸데없는 장비는 남아돌아 먼지만 쌓여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고가(高價)의 현미경이 부대에 보급됐지만, 바로 창고로 들어갔습니다. 군(軍) 내에서 말라리아 감염이 문제 되자 환자 혈액 진단에 쓰라고 보내온 것입니다. 병리나 진단검사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군의관들은 말라리아 판독을 할 줄도 모르는데, 덜컥 현미경을 사서 부대로 내려 보냈습니다. 진료를 보는 당사자인 군의관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탁상행정을 벌인 결과이지요." 폐렴 진단에 필요한 고급형 청진기를 들여오려고 하니까 구매 품목에 없다며 안 된다고 하면서도 연말에는 남은 예산을 다 써야 한다며 필요도 없는 의무품을 더 사들이게 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일선 부대에 배치된 군의관들은 병원 인턴을 막 마친 초보 의사부터 이비인후과·흉부외과 전문의까지 천차만별이다. 또 입대 전 일반 환자만 봐 왔던 군의관들은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잘 생기는 질병이나 전염병에 대한 별도의 학습이 필요하다. "군의관 재직 3년 동안 군대에서 많이 발생하는 피부질환이 뭔지, 감별 포인트가 뭔지, 치료는 어떻게 하는지, 흔한 골절은 뭔지, 전염병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등 군진(軍陣)의학 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이 부분만 강화해도 장병 치료가 효율적으로 돌아갈 텐데요."

군병원에 소속된 군의관은 의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의무사령부의 지휘를 받는다. 하지만 이는 전체 군의관의 30% 정도다. 대다수 1차 의료를 담당한 군의관들은 일선 부대 지휘관 휘하에서 근무한다. 그러다 보니 진료환경 개선에 대한 중위·대위 군의관의 목소리는 군인의 시각으로 무장된 중령·대령 지휘관들에 의해 무시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20년 전 군의관 생활을 했던 한 의대 교수는 "그동안 강산이 몇번이나 바뀌었는데도 군의료는 어떻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느냐"면서 "뇌수막염 사건 등 대부분의 군의료 사고는 1차 진료 부실에서 나오는데, 그걸 아직도 방치하고 있다"며 혀를 찼다. 국방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말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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