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새 나눔 문화_ 크라우드 펀딩

입력 2011.06.14 03:02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 적은 돈으로도 응원할 수 있어요
소액 집단투자로 예술가 후원
2~3년전 성공한 미국·유럽을 벤치마킹, 한국에선 '소셜펀딩'으로 알려지기 시작
목표 금액 못 채우면 전액 환불 - 돈이 아닌 공연표·시제품 등으로 보상

윤옥희(43)씨가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한 것은 지난 5월, 어느 기업의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있던 작은 홍보 배너를 통해서였다. "사실은 크라우드 펀딩이 뭔지는 잘 몰랐고 문화나눔이라는 말이 있어서 클릭을 해봤어요. 평소에 공연이나 전시는 보러 다녔거든요."

그렇게 시작된 클릭에서 옥희씨는 새로운 문화나눔을 경험하게 됐다. "이원국 발레단의 '돈키호테' 공연에 무대의상이 필요한데 저나 다른 분들이 내는 돈을 모아 무대의상 비용을 마련한다는 거예요."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해준 후원자들을 사전 리허설에 초대한다는 메시지를 보니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대중의 후원으로 좋은 아이디어나 재능을 지지하는 크 라우드 펀딩이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다. / 그림·사진=한국문화예술취원회 제공
기부를 위해 본인 정보를 입력하고 결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옥희씨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4주라는 주어진 기간 내에 목표 금액이 다 모이지 않을 경우, 후원금이 환불된다는 점이었다. 옥희씨는 "목표가 완수되지 않으면 아예 지원이 되질 않는다고 하니, 꼭 100%에 도달해서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커져서" 내친김에 "발레를 꿈꿨던 한 사람으로서 조그맣지만 두터운 마음 드리고 싶습니다"라는 응원글도 해당 모금 페이지에 남겼다. 옥희씨 같은 사람들의 정성이 모여 이원국 발레단은 지난달 10일 140명이 참여해 500만원의 예정 금액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크라우드 펀딩 또는 소셜펀딩이라 일컫는 소액 후원 사이트들이 등장하고 있다. 1월에 디스이즈트루스토리(www.thisistruestory.co.kr )가 문을 열었고 3월엔 콘크리트(concreate.me)가, 4월엔 문화예술위원회 크라우드 펀딩(fund.arko.or.kr )과 펀듀(www.fundu.co.kr ) 외 서너 개가 생겨났다. 이어 5월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크라우드 펀딩을 육성해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창업'을 적극 지원한다는 안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보다 앞서 2~3년 전에 크라우드 펀딩과 관련한 성공한 사례들이 있다. 특히 2009년 4월 시작한 미국의 킥스타터(www.kickstarter.com )는 매년 4배가 넘는 가파른 성장세와 월 700만달러(약 75억8000만원)가량의 대규모 모금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들은 대부분 미국의 킥스타터를 벤치마킹하면서 출발했다. 디스이즈트루스토리 임현나(30) 대표는 온라인 게임업체 해외 지사에 근무하던 중 크라우드 펀딩으로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뒤, 2010년 미국에 건너가 킥스타터 등 관련 업체를 직접 방문해 우리나라에서의 실현 가능성 여부를 검토하고 준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전혀 없던 방식이어서 네이밍부터 고민해야 했어요. 마침 소셜커머스가 붐을 일으키고 있던 때라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소셜펀딩'이라는 말을 만들었죠."

디스이즈트루스토리는 오픈한 지 석 달 뒤부터 성공 프로젝트를 배출하기 시작해 6월 현재 세 개의 100% 모금 완료 사례를 갖고 있다.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 프로젝트, 신인 작곡가 소원석의 앨범 발매와 쇼케이스 진행 프로젝트, 대학생들의 손 편지지 쓰기 프로젝트 등이 그것이다. 목표 금액은 각각 300만원, 215만원, 20만원으로 참여자는 총 233명이었다.

크라우드 펀딩에서 성공한 신인 작곡가 소원석씨는 지난 4월, 모금 당시 약속한 대로 후원자들을 초대해 쇼케이스를 진행하고 후원금으로 제작한 앨범 CD를 선물했다. 소씨는 "음악을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좋은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있으면 또다시 해 보고 싶다"고 했다.

3월에 시작한 콘크리트는 젊은 인디밴드를 후원하는 쪽으로 특화하고 있다. 이동건(26) 대표는 2010년 독일 유학 중 한 수업에서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올 1월 우리나라에 들어오자마자 대학교 동아리 친구 2명과 준비해서 사이트를 만들었다. 이 대표는 "기부는 지루하고 따분한 것이라는 인식을 넘어서기 위해 게임 형식과 같은 재미 요소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하는 재미란 100% 모금 완료가 되지 않으면 지원이 취소되는 '모 아니면 도'의 방식과 후원금에 따라 차별적으로 보상을 하는 형식을 말한다. 일례로 현재 모금을 진행하고 있는 작곡가 겸 가수 박솔씨는 15만원 이상 후원자에게는 음반 수록곡의 코러스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30만원 이상일 경우 직장 사무실로 찾아가 작은 콘서트를 열어 준다고 제시해 이미 해당 후원을 받아 놓은 상태다.

현재 우리나라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들은 문화예술위원회를 제외하고는 전자상거래 업체로 등록되어 있다. 후원 또는 기부라는 용어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소득공제가 가능한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곳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뿐이다. 모금에 참여하려는 이들의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부산에 본사를 두고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펀듀의 이창구(37) 대표는 "크라우드 펀딩은 지분 또는 소유권을 발생시키는 수익성 투자 사이트와는 구별되며, 대가 없이 무조건적으로 지원하는 기부 사이트와도 차별점이 있다"며 "좋은 아이디어로 첫 시작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투자를 받지만, 돈이 아닌 현물이나 참여 등으로 보상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투자와 기부 중간 지점에 있는 게 아닐까요?"라고 했다. 펀듀는 1인 기업 등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시켜 가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담당하고 있는 김상희 과장은 해당 업무를 진행하면서 본인의 일이 '미래의 백남준을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 당시에 백남준씨가 아이디어만 있고, TV가 없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 봤어요. 무릎을 쳤죠.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후원 하나하나는 그 기발한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TV 한 대 한 대를 지원하는 일이 아닐까 해요."

시기적인 이유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의 크라우드 펀딩 성공 프로젝트 사례는 10개 내외다. 해외에서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새 바람을 불러올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