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소설가 정유정(45)의 장편 소설 '7년의 밤'(은행나무 출간)이 의미 있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월 말 출간된 이 소설의 판매 부수는 5월 하순 현재까지 약 7만부. 비슷한 시기 미국 출간 소식이 다시 화제를 일으키며 국내에서도 재점화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의 같은 기간 30만부에는 못 미치지만, 올해 출간된 한국 작가들의 소설 중에는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 판권 계약까지 겹치며 경사를 맞았다. 출판사 측은 영화사 '위더스 필름'과 원작료 1억원+α(흥행 시 추가 수익)에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은행나무 주연선 대표는 "작가의 원작료로는 최고 수준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 책에 제안서를 보낸 영화사만도 총 15곳"이라고 말했다.

100만부도 가끔 나오는 소설 시장에서 절대 수치로만 보면 이 작가의 성과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그의 성취가 도드라지는 이유는 3무(無)인 이 작가가 특별한 홍보 없이 소설의 힘만으로 거둔 성적이기 때문이다. 대중에게는 아직 낯선 사실상의 무명작가, 수도권 거주 경험도 없는 지역 문인(광주광역시), 그리고 응급실 간호사 출신으로 정식 문학공부 한 번 받아 본 적 없는 남다른 이력이다.

광주 기독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던 그녀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서른다섯 때부터. 자신이 간호사로 근무하던 병원 중환자실에서 3년6개월 동안 간암으로 누워 있던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떠나 보낸 뒤였다. 그때까지 작가는 사실상의 소녀가장이었다. 그는 "빚더미 집안과 동생 셋을 책임지며 20대를 보내야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의 꿈은 소설가였다"면서 "정식 문학수업을 받은 적은 없지만 찰스 디킨스와 스티븐 킹을 마음의 스승으로 삼고 무작정 썼다"고 했다.

'7년의 밤'은 형식적으로 스릴러. 2007년 한 청소년문학상 공모에 투고해 당선되며 등단한 작가의 세 번째 작품이다. 우발적으로 한 소녀를 차로 치어 죽인 뒤 죄책감으로 미쳐가는 사내와 그 사내에게 사적(私的) 복수를 감행하려는 소녀 아버지와의 대결을 놀라운 속도감의 문체로 그렸다. 분명히 대중소설의 형식인데,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다. 문장은 평이하고 범박(汎博)하지만, 한국 문단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스케일의 이야기가 매력이다.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인데도, '밥'과 '잠'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게 만드는 괴력을 지녔다.

광주광역시 자택의 서재에 앉은 소설가 정유정.“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선배 소설가 박범신은 "내면화 경향의 '90년대식 소설'들이 아직 종언을 고하지 않고 있는 현 단계에서, 이 작가가 보여주는 역동적 서사와 통 큰 어필은 새소운 소설의 지평을 여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일반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도 쏟아지고 있다. 인터넷 서점 사이트인 예스24에는 이 책에 대한 독자의 독후감만 22일 현재 107개가 올라 있다. "한국문학에도 이런 소설이…"라는 최상급 칭찬은 물론, "솔직히 우리나라 소설에 대한 기대치가 크지 않았는데…"라는 반어적 소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작가는 최근 바닷속 은어의 소리를 듣는 신기한 능력의 눈먼 어부에 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사고로 눈이 먼 뒤 생존이 절박해진 어부에게 생겼던 이 놀라운 능력은, 그 능력이 소문나고 외부 지원금이 몰려들자 사라져버렸다는 실화다. 그는 이 실화를 전하며 초심(初心)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스스로 정한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는 은어 소리가 계속 들릴 것 같다"는 것. 그 목표가 구체적으로 어디까지냐고 물었다. 그는 "어떤 작가는 자신의 목표를 '예술의 전당'에서 찾고, 누구는 '상아탑'에서 찾지만, 나는 '광장'에서 찾는다"면서 "단순히 독자를 웃기고 울리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아예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게 제 궁극적 목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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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7년의 밤, 초고속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