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출 어디 없나요?" 대학로는 급하다

조선일보
입력 2011.05.26 03:02

전에 없던 '공개 求人'까지
말이 좋아 '수퍼맨' 실제론 '땜방맨'
궂은 일 도맡아하고 대우도 박해…
조건 좋은 뮤지컬로 옮기는 현상도
"그래도 연극이 무대 오르면 희열"

"재공지합니다. 연출하는 김광보입니다. 함께 작업할 경력 있는 조연출을 찾습니다…."

대학로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연출가 김광보가 최근 트위터에 '조연출 급구' 광고를 거푸 올렸다<사진>. 그는 "연극 '주인이 오셨다' 등 여러 편을 동시에 준비하느라 조연출이 부족했다"면서 "공개적으로 조연출을 구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명동예술극장에서 '시라노 드 베르쥬락'을 공연한 연출가 김철리는 서울연극협회를 통해 조연출을 조달했다.

연극동네가 '조연출 구인난(求人難)'으로 아우성이다. 최용훈 박정희 등 이름난 중견 연출가들조차 "조연출 구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어떤 연출가 밑에서 5~10년 도제식으로 연출을 공부하고 입봉(데뷔)하던 전통이 없어진 것이다.

조연출은 '수퍼맨'

조연출(助演出)에 대해 '연출가를 돕거나 대리하는 사람, 또는 그런 지위'라는 국어사전의 설명은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 연극동네에서 조연출은 '수퍼맨' '올라운드 플레이어' '일당백' '만능'으로 불린다. 잡일도 많고 심신이 피로한 직업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처우는 편당 100만원 남짓으로 박하다.

일정 조율과 연습실 관리, 연출가와 배우·스태프 사이의 대화창구, 소품 제작, 공연 진행 등 연극의 규모가 작을수록 조연출의 일거리는 늘어난다. '땜방'이 필요하면 언제나 조연출이 1순위다. 한 50대 연출가는 "조연출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내는 사람"이라면서 "여배우들의 생리일까지 수첩에 기록해야 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왜 구인난인가

연극 '예술하는 습관'을 준비 중인 연출가 박정희는 "빨리 입봉하고 싶은 욕망, '대가의 조연출'이라는 후광효과의 점차적 소멸,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뮤지컬 선호 등이 '조연출 구인난'의 원인"이라 말했다.

이 밖에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들이 졸업 직후 올린 몇몇 공연이 성공모델을 만든 점, 신진 예술가에 대한 지원체계가 강화된 점도 그 배경으로 꼽힌다.

극단 물리의 연출가 한태숙 밑에서 7년간 조연출을 하다 독립한 서재형은 "조연출 시절 최고 수준의 공연장과 배우, 스태프를 두루 경험했다"면서 "젊음과 바꿔야 했지만 내 경우에는 장점이 많았다"고 했다.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받고도 최근 '3월의 눈'에서 조연출을 한 박혜선은 "해석의 폭을 넓히고 인맥과 노하우를 쌓을 기회지만, 연출가를 옹호해야 하고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단점"이라고 말했다.

출구는 입봉

27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연변엄마'의 조연출 송정안은 요즘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잔다. 조연출 경력은 뮤지컬 '엣지스'를 포함해 3년간 10편 남짓. 그는 "인이 박이고 각오가 돼 있어 힘들지는 않다"면서 "조연출은 양쪽에서 욕먹기 쉬운 자리라 우리끼리는 '잘해도 본전'이라고 한다"며 웃었다.

실제로 대학로 조연출은 기근이지만 가치가 올라가지는 않았다. "고생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송정안은 "배고픈 길이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모이는 사람들이 좋고 그 에너지로 연극이 무대에 올려지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조연출의 출구요? 입봉이지요. 앞으로 2년 더 던지며 길을 트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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