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호주얼리호의 진실'이 재판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석해균 선장의 생명을 위독하게 한 것은 우리 해군의 유탄이 아닌 해적이 쏜 총알로 확인됐으며, 해적 가운데 한 명이 총격 현장에서 총을 들고 있었다는 다른 해적의 증언도 나왔다.
◆이국종 “해군 총알, 치명상 아니다… 석 선장은 우리와 다른 종족”
25일 오후 부산지법 301호 법정에서 열린 해적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석 선장의 주치의인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는 "석 선장이 소말리아 해적이 쏜 AK 소총 탄에 치명상을 입었고, 해군의 유탄에는 비교적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석 선장의 왼쪽 배 윗부분에서 오른쪽 옆구리로 관통한 것으로 추정되는 총알은 대장을 터트리고, 간 일부를 손상하는 치명상을 줬고, 왼쪽 손목과 팔꿈치 사이를 관통한 총알도 동맥 한쪽을 거의 끊을 정도의 가장 심한 손상을 입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왼쪽 대퇴부에서 나온 AK 소총 탄도 뼈가 밖으로 나올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혔으며 이들 총알은 모두 왼쪽에서 발사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왼쪽 팔과 대퇴부에 상처를 준 총알은 모두 위에서 아래쪽으로 발사됐고, 몸을 관통한 총알도 누워 있다가 맞았을 수 있다”면서 “이들 총알은 모두 석 선장이 총알을 피해 도망가거나 몸을 비틀면서 맞은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는 해적 마호메드 아라이가 엎드려 있는 석 선장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반면 석 선장의 오른쪽 엉덩이 위쪽과 오른쪽 무릎 위쪽에서 각각 발견된 해군 탄환에 대해 이 교수는 “직사 화기에서 발사된 총알이 근육층을 뚫지 못했다는 것은 직사(일직선상에서 발사)된 것이 아니라 어디에 맞고 튄 유탄으로 비교적 가벼운 상처를 입혔다”고 증언했다.
이 교수는 “석 선장의 오른쪽 하복부에서 나왔으나 오만 현지에서 분실한 것은 탄환과 다른 은색이었고, 얇은 것으로 미뤄 철판 같은 게 튀어서 구부러진 것처럼 보였으며 탄환이라기보다는 파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석 선장은 쓰러지면서도 부하에게 먼저 피하라고 말할 정도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우리와 다른 종족”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귀화 희망’ 해적, “동료가 피격 현장에서 총 든 것 봤다”
‘한국에 귀화하고 싶다’던 해적 아울 브랄랫은 이날, 우리 측 선원이 아닌 해적으로서는 처음으로 동료 마호메드 아라이가 석 선장을 쐈을 정황을 증언했다. 아라이는 “당시 (석 선장이 총에 맞은) 조타실에서는 총을 든 적도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브랄랫은 이날 법정에서 검사가 1월21일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의 상황을 묻자 “조타실에 아라이가 있었고, 총을 든 것을 봤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해적 압디하드 아만 알리도 증인신문에서 “아라이가 당시 조타실에서 총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들은 또 ‘조타실에서 내려가는 계단에서 아라이가 총을 버리는 것을 봤느냐’는 질문에 “봤다”고 분명하게 답하거나 “총을 버리는 것을 본 것 같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그러나 아라이가 총 쏘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브랄랫은 “아라이가 조타실에서 선원의 셔츠를 잡고, ‘토크(talk·말해라), 토크’라고 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고, 알리는 “해군의 1차 진압 후 두목으로부터 ‘해군이 또 공격해 오면 선원들을 윙 브리지로 내세우자’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를 바탕으로 “해적들이 선원들을 ‘인간방패’로 활용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아라이의 변호를 맡은 권혁근 변호사는 당시 석 선장이 총격을 받은 조타실에는 수많은 선원과 해적이 있었지만, 아라이가 석 선장에게 총을 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한명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총격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권 변호사는 또 ‘인간방패’와 관련해서도, “선원들을 윙 브리지로 나가게 한 것은 선원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지, 인간방패로 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알리의 증언을 통해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전날에 이어 동시통역을 계속했지만, 영어와 소말리아어 통역인 사이에 의사소통이 잘못되거나 영어 통역인이 검사의 질문을 잘못 전달해 엉뚱한 대답이 나오는 등 혼선을 빚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날 증인신문을 모두 끝내고, 26일부터는 증거 조사와 아라이, 알리에 대한 피고인 신문에 들어갈 예정이고, 27일에는 검찰의 구형과 해적들의 최후진술, 배심원단의 평결을 거쳐 선고된다.
한편, 구치소에서 한글과 우리 말을 배우고 있는 브랄랫은 서툰 우리 말로 “검사님, 앞으로는 다시 해적질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고, “형집행 후 한국정부에 시민으로 살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며 또다시 귀화의사도 밝혔다. 알리도 증언 과정에서 우리나라 말로 “오른쪽, 왼쪽”이라고 말해 법정에서 한때 미소가 번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