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규의 법정이야기] 소년원 문턱까지 갔다가 할머니 품으로 돌아온 아이

조선일보
  • 최원규 사회부 차장
  • 이철원
    입력 2011.05.19 23:15 | 수정 2011.05.20 18:38

    "보호관찰 중 오토바이 훔쳐 소년원行 위기 처한 경호
    한때 모범생이었으나 부모이혼·교통사고 겪으며 비행소년과 어울려 추락…"
    "재판장은 경호 일으켜세워
    폐지 주워가며 키운 할머니 안아드리게 한 뒤
    소년원 대신 中卒 검정고시 응시 명령"

    최원규 사회부 차장
    지난 2월 24일 서울가정법원 소년법정에 이경호(18·가명)군이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섰다. 자신을 소년원으로 보내느냐를 결정하는 재판이어선지 경호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보호관찰법 위반, 특수절도 같은 심각한 죄명(罪名)이 경호에게 붙어 있었다.

    경호는 작년 4월 비행(非行)을 저질러 단기보호관찰 1년을 선고받았는데, 그 기간에 보호관찰소의 출석 명령을 몇 차례 어기고 오토바이를 훔친 범죄가 적발됐다. 경호는 이런 혐의로 체포돼 소년분류심사원에 유치돼 있다가 이날 재판에 나온 것이었다. 보호관찰기관에선 "보호관찰보다 무거운 '소년원 송치'로 처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정 한편에 앉은 경호 아버지와 할머니는 초조했다. 할머니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목 깊은 곳으로 꾹꾹 누르고 있었다. 경호 부모가 이혼한 뒤 몇 해 동안 혼자서 폐지(廢紙)를 모은 돈으로 키운 손자였다.

    경호의 국선보조인 문대영(29)씨에게도 경호는 적어도 기록상으론 '나쁜 아이'였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을 마친 그는 올 초 법원의 사법행정 실무수습에 참여했다가 국선보조인으로 선임됐다. 중학교 교사를 했던 경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소년분류심사원에서 경호를 만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경호는 다리를 절고 있었다. 보호관찰 기간에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당했다고 했다. 고의적인 출석 명령 위반은 아닌 듯했다. 경호는 "정말 잘못했다"며 연방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문씨는 발품을 들여 서울 외진 곳에 사는 경호 가족과 담임 선생님들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선생님들은 경호가 반듯한 학생이었다고 했다. 경호는 초등학교 때까지는 모범생이었다. 일용직 통신기사인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동생까지 다섯명이 단칸 셋방에서 부대끼며 살았지만 행복했다. 경호는 초등학교 5년간 반장을 했고 성적도 우수한 편이었다.

    그러나 경호는 중학교 입학 직후 교통사고를 당해 몇달간 입원하는 바람에 학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면서 겉돌기 시작했다. 그 무렵 어머니까지 집을 나가면서 집안은 뒤죽박죽이 됐다. 집 나간 어머니를 찾겠다며 아버지도 3년 가까이 집을 비웠다. 살림은 할머니가 폐지 수집을 해가며 근근이 꾸려나갔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경호는 비행 소년들과 어울렸고, 결국 그들이 학생들에게 돈을 빼앗는 현장에 같이 있다가 공범으로 지목돼 보호관찰을 선고받았다. 보호관찰 기간 중 보호관찰소의 출석 명령을 어긴 것은 다시 교통사고를 당한 탓이 컸다. 집으로 돌아온 경호 아버지도 야간작업을 하느라 보호관찰관의 전화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오토바이를 훔친 것에 대해 경호는 "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했지만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계속 거절당해 화가 나서 그랬다"며 뉘우치고 있었다.

    문씨는 이런 사정을 담은 장문의 의견서를 재판부에 냈다. 가족 품에서 잘못을 반성할 기회를 경호에게 다시 줘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재판장인 김귀옥 부장판사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경호에게 일어서라고 했다. "경호야. 아버지, 할머니 한 번씩 안아드리렴." 경호와 아버지는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고, 할머니는 대성통곡했다. 김 부장판사는 다시 말했다. "경호야. 할머니가 왜 저리 우시는지 알지?"

    김 부장판사는 소년원 송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경호에게 장기보호관찰과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응시하라는 특별이행명령을 내렸다. 소년원 문턱까지 갔던 경호를 다시 할머니 품에 안겨준 것이다. 할머니는 법정 밖에서 문씨의 손을 잡고 또 한참을 울었다.

    우리 법은 만 19세 미만의 소년범에 대해선 처벌보다 선도·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이 금고(禁錮)형 이상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면 일반 형사사건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지만, 이보다 가벼운 범죄를 저지르면 법원 소년부에서 소년보호사건으로 심리해 보호관찰이나 소년원 송치 같은 보호처분을 결정한다. 하지만 소년범죄가 급증하고 흉포화하는 요즘, 처벌과 선도 중 어디에 무게를 둘지를 결정하는 건 쉽지 않다. 일각에선 수사기관과 법원이 소년범죄에 너무 온정적이어서 범죄를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고 소년범을 성인 범죄자와 똑같이 다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요한 건 죄질(罪質)과 사정을 정확히 가려 그에 맞는 처분을 하는 것이다.

    경호는 국선보조인의 노력과 이를 눈여겨본 판사 덕분에 가족 품에 안겼다. 그들의 판단이 맞았는지는 앞으로 경호가 입증해야 한다. 경호는 지금 요리사가 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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