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경북 문경의 한 폐채석장에서 십자가 모양의 나무에 못 박혀 숨진 엽기적인 '십자가 사망사건'을 단독자살로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사건을 수사 중인 경북 문경경찰서도 검찰과 협의해 단독자살로 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17일 경북문경경찰서는 "국과수 감정결과 숨진 김모(58·택시 운전사)씨는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단독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김씨의 사망원인은 옆구리 상처로 인한 과다출혈과 질식"이라고 밝혔다.
국과수 감정결과에 따르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전동 드릴에서도 김씨의 DNA만 검출됐다. 김씨가 타살됐거나 다른 사람이 김씨의 죽음을 도운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김씨의 발밑에서 발견된 A4용지 3장 분량의 실행계획서도 김씨의 필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지난 1일 오후 6시쯤 경북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의 한 폐채석장에서 예수의 죽음을 재현한 듯 십자가에 매달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1990년대에 이혼했으며 자식 두 명이 있다. 전 부인, 자식들과는 연락을 끊고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발견 당시 김씨 시신은 건조한 봄날씨 탓에 미라처럼 말라 있었다. 하의 속옷만 입은 채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 있었고, 손과 발은 세로 180㎝, 가로 187㎝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다. 다리와 목은 줄로 묶여 있었으며 오른쪽 옆구리에선 흉기에 찔린 상처도 발견됐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도 처형 당시 오른쪽 옆구리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
경찰관계자는 "국과수가 2회에 걸쳐 십자가에 매달리는 과정을 재연해본 결과 단독으로도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면서 "외부에서 개입한 흔적이 없다는 결론이 난 만큼 단독자살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군가가 김씨의 자살을 도왔다면 혈흔 등 DNA의 흔적이 남거나, 발각을 두려워해 도구를 다 치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과수가 재연한 십자가 자살과정은 ① 우측 발과 좌측 발에 차례로 못을 박고 ②전동 드릴로 양손에 구멍을 뚫은 다음 ③ 못이 박혀 있는 십자가에 손을 걸쳤다는 것이다.
김씨의 시신이 발견된 나무 십자가는 높이가 157㎝ 정도다. 바닥에는 김씨의 발 크기(260㎜)에 맞는 발판이 있다. 김씨의 양 발가락에 가까운 쪽의 발등에 각각 15㎝짜리 못이 박혀 있었다.
물론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김씨가 극심한 고통을 어떻게 견뎠느냐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심장병과 관련된 약통이 발견됐다. 당초 경찰은 이 약은 두꺼비 독(毒) 성분이 들어 있어 대량 복용할 경우 전신이 마비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과수 감정결과 김씨의 시신에서는 마비나 환각을 유발하는 약물이 검출되지 않았다. 단독자살이라면 김씨가 모든 고통을 그대로 견뎠다는 이야기가 된다. 경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 "국과수 감정서에 따르면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고통을 참을 수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