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국무총리가 감사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해 5월 부산저축은행 등 저축은행의 부실 대출 규모가 수조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청와대가 저축은행 문제의 심각성을 이미 1년 전에 알았으면서도 일찍 결단을 내리지 못하다가 올 1월에야 삼화저축은행에 대한 영업정지를 내리는 등 뒤늦은 대응에 나선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16일 "김황식 당시 원장은 작년 5월 이명박 대통령에게 저축은행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고하며 '부산저축은행을 포함한 5개 저축은행의 부실 규모만 2조6000억원에 달하는 등 저축은행의 불법·부실 대출 문제가 심각하다'는 취지로 보고했다"고 말했다.

이 무렵 금융감독원은 일부 저축은행의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문제에 대해 조사를 벌이던 중이었다. 이 대통령은 감사원 보고를 받은 즉시 이 조사를 "전 저축은행의 모든 PF 대출로 확대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시 조사 결과 파악된 저축은행의 전체 부실 PF 대출 규모는 3조8000억원 정도 됐으며 이 부실채권은 지난해 6월 자산관리공사(캠코)가 매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에 저축은행이 일반 대출로 분류해 놓았던 3조원가량의 PF 대출이 추가로 드러나는 등 부실 대출 규모가 점점 늘어나자 정부 안에서도 저축은행 부실을 언제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대립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청와대가 감사원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은 일은 있지만 금융대란 등을 우려해 제반 준비를 갖춘 뒤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며 "실태 파악과 처리 방안 마련, 입법 절차 진행 등을 서둘러 진행해온 만큼 '늑장 대응'이란 말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당시 정부 안에서는 경제에 무리가 있더라도 관련자를 문책하고 빨리 털고 가자는 의견과 대규모 예금인출 등 금융 대란 사태를 우려하며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연착륙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교차했다"고 전했다. 저축은행 관련 결정이 늦어진 데는 작년 11월 G20 정상회의도 영향을 미쳤다고 다른 여권 관계자가 전했다. 금감원은 올해 초까지도 감사원에 "저축은행의 취약한 자기자본비율이 공개되면 대규모 예금인출 등 혼란이 예상되니 감사 결과 공개를 늦춰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