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납북자 呼名 듣지 못한 카터

입력 2011.04.29 23:00

이하원 정치부 차장

지난 2007년 9월 1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뒤편 라파예트 공원. 주로 한국계·일본계 미국인들로 구성된 '희망을 위한 납북자 구조센터' 회원 30여 명이 백악관을 향해 섰다. 6·25전쟁 당시 북한으로 끌려간 8만3000여 명을 포함, 전 세계에서 납북된 이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1979년 노르웨이에서 끌려간 전 수도여고 교사 고상문씨, 1972년 조업 중 납치된 동진호 선원 김정옥씨…. 참석자들은 릴레이 형식으로 각각 100~500명의 납북자를 호명했다. 밤이 되자 손전등을 한 손에 들고 호명을 계속했다.

이 행사를 인상깊게 지켜본 사람이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의 이미일 이사장이었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북한자유주간'에 27일 서울 세종로에서 납북자 이름 부르기 행사를 개최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한 다음 날이었다. 이 이사장은 "꿈에도 잊지 못하는 가족들이 조국과 가족에게 돌아오길 바라며 정성 들여 이름을 부르려고 한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인 구순(九旬)의 김복남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남편 이성환씨의 이름을 불렀다. 지난 60년간 북한에 억류된 이들의 이름이 28일 새벽까지 불렸다.

장애인으로 태어나 몸이 약한 이 이사장은 밤샘 행사가 끝난 후 병원에 입원했다. 병상에서 전화가 연결된 이 이사장은 목이 쉬어 있었다. 카터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채 서울을 방문한 것이 자연스레 화제에 올랐다. 그의 목소리엔 카터에 대한 노여움이 묻어났다. "김정일 일가는 8만명이 넘는 납북자들의 생존 여부에 대해 알려주지도 않는 범죄 집단이에요.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분이 그런 사람과 대화를 하겠다고 가서 지난해에 이어 또 속고 오다니…." 장애인에다가 아버지의 납북으로 힘들게 살아온 이 이사장은 카터보다 김정일 체제의 본질을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와는 달리 17년 전 방북 당시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환대만 기억하는 카터에겐 북한 인권, 납북자, 탈북자라는 개념이 낯설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는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이 자신을 '매우 따뜻하고 친근하게' 대했는데 이번에도 환영받았다"고 자신의 블로그에 썼다. 김일성과 '(대동강에서) 잊지 못할 6시간의 뱃놀이'를 했으며 그의 사망에 대해 슬퍼한 것도 소개했다. 서울에서는 "북한 인권에 대해 외부에서 관여할 수 없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김정일을 만나지 못하고 비행기를 타려다가 단지 그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자동차를 돌린 것에 대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카터 전 대통령이 목숨을 걸고 사선(死線)을 넘어온 탈북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더라면 김정일 체제에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밤을 새워 납북자 이름을 부르는 모임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에게 따라붙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뗄 수 있지 않았을까. "자유민주주의의 최선봉인 미국의 대통령 지위에 있었던 분이 자유가 박탈된 사회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어처구니없다"는 이미일 이사장의 말은 그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