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서태지는 과연 公人인가?

조선일보
  •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입력 2011.04.28 00:06

    서태지·이지아 스캔들은 公的 사안 아닌데 프라이버시 짓밟은 것은 폭력성과 관음증의 소산 한국은 남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문명사회인가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며칠간 서태지·이지아 사건이 한국 사회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서민들의 생활고나 보궐선거조차 잊게 만들 정도였다. 자신의 우상이 숨겨온 완벽한 '이중생활'에 충격받은 서태지 팬들은 '서진요'(서태지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카페와 '이지아닷컴'을 만들어 두 사람에 대한 추적과 응징을 시작했다.

    이번 사태에 서태지의 책임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한때 '문화대통령'으로 불렸던 중량감 탓에 일이 커졌기 때문이다. 신비주의 전략의 후광(後光)이 벗겨질 때 날개 없는 추락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결국 서태지는 호된 유명세를 치르는 중이다.

    여러 톱스타가 연루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준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간과되기 쉬운 사생활과 공적 삶의 구분은 연예가 가십거리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문명사적 중요성을 갖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이나 도박 등으로 물의를 빚은 연예인이 대중 앞에 고개를 숙일 때가 있다. "자신이 공인(公人)임을 망각했다"고 사죄하는 것이다. 인기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서태지와 이지아도 공인이기 때문에 결혼·이혼과 관련된 거짓말이 공적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연예인이 과연 공인인지 물어야 한다. '공(公)'이란 말 자체가 '국가와 사회의 일'이라는 뜻이므로, '공인'이란 국가와 사회의 대의(大義)에 복무하는 사람이며 공공성을 구현하는 존재일 터이다. 공익과 공동선의 추구, 공동체에 대한 헌신은 모두 공공성의 구체적 모습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연예인은 예인(藝人)일 뿐이지 결코 공인이라 할 수 없다. 결국 서태지와 이지아는 공인이 아니며 그들의 결혼과 이혼도 공적인 사안이 아니라는 결론이 불가피하다.

    이에 비해 내일로 예정된 영국의 윌리엄 왕세손 커플의 결혼은 공적 사안이며 그들 부부는 명백한 공인이다. 왕실의 존재 자체가 영국인들에게는 국가와 사회의 중대사일뿐더러 세기의 결혼식이 영국 사회와 영연방에서 갖는 정치적 중요성을 왕족(王族) 자신들이 십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족 스스로 공인임을 자처하는 대목이 특히 중요하다. 왕자 결혼식 같은 국민적 축제를 통해 정치공동체를 사회문화적으로 통합시키며, 국민적 자부심과 희망을 고양시키는 공적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는 데 왕가와 영국 시민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과 사의 경계가 명쾌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공적 삶과 사생활을 구별한 후, 사생활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의 단초라 할 수 있다. 각자의 프라이버시가 훼손될 때 인격과 선택권이 침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적 삶의 최대 공헌 가운데 하나는 이 시대가 역사상 최초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발명'했다는 데 있다. 신성한 인권의 핵심은 사적(私的)인 내 몸과 인격이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에게 귀속되는 데 있는 것이다. 근대 이전의 인간은 이를 알지 못했거니와, 현대에 들어서도 나치즘과 공산주의는 시민들의 프라이버시를 체제의 적(敵)으로 여겨 박멸하려 했다. 북한 인민에게도 사생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어야 비로소 인간다운 삶이 보존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서태지와 이지아는 자신들의 결혼과 이혼을 프라이버시로 여겼다. 개인의 그런 결정을 존중하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임은 물론이다. 공인이 아닌 사인(私人)의, 공적 사안이 아닌 사생활에 대해 대중이 그토록 흥분하는 건 한국 사회 특유의 폭력성과 관음증의 소산이라 할 만하다. 서태지·이지아 사태는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한국인의 습관이 공공성의 미명과 결합해 두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초토화시킨 사례다. 이 사례가 가십거리를 넘어 성숙한 삶과 시민적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판독될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짜 박사 신정아는 가장 내밀해야 할 자신의 사적(私的) 삶을 대중에게 앞장서 '판매'했고, 이에 적극 호응한 한국 사회는 그녀의 책을 공적(公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공인(公人) 개념을 남용하면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거나 악용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 사회 위기의 한 징후일 뿐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서태지는 신정아와는 다른 길을 갔고, 그의 선택은 신정아의 길보다는 존중될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서태지 사태는 한국 사회가 남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현대문명 사회인지를 통렬히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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