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초등생까지 화장 열풍… 학교, 두 손 들었다

조선일보
  • 김연주 기자
    입력 2011.04.23 03:02

    지나친 '얼짱 신드롬'… '걸그룹'들이 큰 영향 줘… 등교시간에도 30분씩 화장
    학칙 있으나마나… 화장하는 아이들 워낙 많아… 쉬는 시간 화장실은 파우더룸
    식약청의 경고… "어린이들은 피부 약해 트러블 생길 위험 크다"

    "그 틴트(입술에 색을 내는 화장품의 일종) 나도 발라 볼래."

    "와~오렌지색 되게 예쁘다."

    경남지역 여자 중학교에 근무하는 국어교사 김모(34)씨는 며칠 전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학생들이 각자 화장품 파우치(작은 가방)를 꺼내놓고 '신제품 품평회'를 벌이고 있었다. 한 학생의 파우치 속엔 파우더, BB크림, 틴트,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매니큐어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화장한 학생들 얼굴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학생은 파우더를 발라 얼굴이 뽀얗고, 어떤 학생은 액(液)을 발라 쌍꺼풀을 만들고 아이라인까지 그렸다. 틴트를 발라 입술이 빨간 학생들도 여러 명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이 학교 화장실은 '파우더룸'으로 변한다. 10여명의 학생들이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만지거나 화장을 한다. 서로 눈썹이나 아이라인을 그려주는 것도 흔한 모습이다.

    김 교사도 처음엔 화장이 학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화장한 학생들이 눈에 띌 때마다 "화장을 하지 마라"고 했다. 클렌징폼을 건네주며 "당장 세수하고 오라"고 하기도 했다. 소지품을 검사해 화장품을 압수하기도 여러 번. 그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요즘엔 "어린 나이에 화장하면 피부에 안 좋다"며 달래고 설득한다.

    김 교사는 "화장하는 애들이 워낙 많아 쫓아다니면서 일일이 지적하기도 힘들 정도"라며 "전쟁도 이런 전쟁이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도 주요 고객으로 떠올랐고, 화장품 회사들은 인기 캐릭터를 그린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화장 붐에 두 손 든 교사들

    교사들은 "화장하는 학생이 한 반에 몇 명이라고 세기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서울의 한 중학교 1학년 담임교사는 "학생들끼리 마스카라나 아이라이너를 생일 선물로 주고받을 정도로 화장에 대한 관심이 많다"며 "초등학생 때부터 화장을 시작해 피부가 어른처럼 엉망인 애들이 갈수록 많아진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걱정이다.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김순옥씨는 작년부터 딸아이가 각종 화장품을 사 모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김씨의 딸은 바쁜 등교시간에도 30분씩 스킨·로션 등 기초 화장품부터 BB크림, 파우더까지 정성껏 바른다. 김씨가 야단을 치며 화장을 못하게 했더니 딸은 "화장을 안 하면 부끄러워서 학교에 못 가겠다"고 반항했다. 김씨는 "딸아이가 사춘기여서 그러려니 했지만 공부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학생들의 화장 문제가 심각해지자 얼마 전 식약청은 교육청과 학교에 색조 화장품 등의 사용을 자제하게 해달라는 요청문을 보내기도 했다. 식약청 화장품정책과 양준호 사무관은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피부가 약해 립스틱이나 매니큐어 등 색조 화장품을 사용하면 피부 트러블이 생길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얼짱 신드롬'

    성적이 상위권이거나 모범적인 아이들이 화장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처럼 학생들 사이에 화장이 널리 유행하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얼짱 신드롬'과 10대 멤버들이 많은 '걸그룹'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건국대 이동혁 사범대 교수는 "요즘 10대들은 과거 세대보다 자신을 잘 포장해서 당당하게 드러내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다"며 "그런 학생들의 특성이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어우러져 나타나는 현상 같다"고 말했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김용대 부장은 "예뻐지고 싶어하는 것은 사춘기 여학생들의 자연스러운 특징이지만 화장을 통해 자기만족을 추구하려는 청소년의 집단적 현상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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