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입학사정관제의 걱정스러운 사정

조선일보
  • 김형기 논설위원
    입력 2011.04.18 23:30 | 수정 2011.04.19 01:43

    김형기 논설위원

    얼마 전 서울시내 23개 고교의 3학년 담임교사들이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을 고쳐주었다가 교육청 감사에 적발됐다. '성격이 다혈질'이란 표현을 '남자답다'로 고쳐준 경우도 있고, 장래 희망란의 직업을 바꿔준 경우도 있다. 모두가 입학사정관 입시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라고 한다.

    올 입시에서 신입생의 일정 비율을 입학사정관제로 뽑기로 하고 정부 지원금을 받은 60개 대학 중 다섯 군데가 지원금의 3~20%를 회수당했다. 고려대는 약속한 선발인원의 절반 이상을 논술과 수능 성적으로 뽑은 사실이 드러나 2억5000만원을 내놓았다. 서울대(6600만원)를 비롯한 나머지 대학들은 전형에 콩쿠르 수상 실적이나 토익·토플 성적 같은 자료는 반영하면 안 된다는 지침을 어겨 문제가 됐다.

    입학사정관제는 학생을 시험 성적으로만 뽑지 말고 개개인의 특성과 잠재력을 다양하게 고려해서 뽑으라는 제도다. 그런데 이 훌륭한 취지가 무색하게 일선 학교들은 입학사정관에게 잘 보이려 학생의 성격까지 조작하고, 대학들은 겉으로는 새 제도를 받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자기네 방식과 노하우로 학생을 뽑았다. 대학 입시에 새 바람을 불어넣겠다고 도입한 현 정부의 '개혁상품'에 뭔가 허점이 있다는 이야기다.

    입학사정관제는 미국이 1920년대에 만들어낸 제도다. 미국도 그전까지는 학업 성적 위주로 학생을 뽑았다. 그러다 명문대 입학생 중에 유대인의 비율이 너무 높아지자 평가 기준에 학업 성적 외에 인성, 잠재력, 지도자적 자질 같은 요소들을 포함시킨 것이 입학사정관제 도입의 배경이다. 동기는 썩 아름답지 않았지만 이 제도는 이후 학업 성적 위주 입시제도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뿌리내렸다.

    미국 입학사정관제의 핵심은 대학이 학생 선발의 '전권(全權)'을 쥔다는 점이다. 심사 과정이 불투명해도 학생·학부모를 포함해 누구도 대학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수능(SAT) 만점과 내신 최고 등급을 받은 학생이라도 대학이 "우리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떨어뜨리면 그만이다. 모두가 오랜 세월 학생·고교와 대학 사이에 신뢰가 축적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문해봐야 한다. '공정' '평등' '공평'에 대한 욕구가 유난히 강한 한국 사회에서 이런 제도가 가능하겠는가. 수능 점수가 크게 모자라는 옆 아이는 '리더십' '품성'이 좋다는 이유로 합격하고 내 자식은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질 때 군말 없이 승복할 수 있겠는가. 대학들이 학부모 항의나 소송을 겁내지 않고 "당신 자녀가 성적은 우수하지만 인간성이 안 좋아 보여 불합격시켰다"고 버틸 수 있겠는가. 이 물음에 '예'라고 대답할 사람이 많지 않다면 미국식 입학사정관제를 우리 몸에 딱 맞게 이식(移植)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뜻한다.

    정부가 정말로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대학 입시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면 이런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어떻게 줄일까 고민해야 한다. 그 첫발은 입학사정관제의 정신을 되돌아보는 데서 떼야 한다. 정부가 모델로 삼은 미국 제도는 100% 대학 자율형이다. 반면 우리 입학사정관제는 정부가 대학들에 채택을 강권하고 심사기준에 간섭하는 타율형이다. 용어만 같을 뿐 사실상 다른 것이다. 정부는 대학에 더 많은 자율을 주고, 대학은 자율에 걸맞은 책임감 위에서 고교와 사회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선발방법들을 개발해 나갈 때 입학사정관제는 비로소 제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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