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지진 후폭풍] 주인은 떠나고… 가축 십여만 마리 '굶주린 비명'

    입력 : 2011.04.15 03:09 | 수정 : 2011.04.15 14:04

    후쿠시마 원전 20㎞내 버려진 동물들 굶어 죽어가
    "남의 물건에 손대면 안된다" 목줄 묶인 개 그대로 방치
    "매뉴얼에 돕는 규정 없다"… 日당국, 사료 제공도 안해

    원전사고로 방사능이 누출돼 출입금지령이 내려진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반경 20㎞ 안에서 동물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미국 CNN 방송은 14일 원전에서 몇㎞ 떨어진 한 마을에 버려진 동물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도했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어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비글 종의 개 한 마리가 프리랜서 기자가 주는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이 개는 목줄로 묶여 있어 먹이를 찾아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동네에서 먹을 것을 찾지 못해 굶어 죽은 후 도로 위에서 썩어가는 개의 사체, 목줄을 스스로 끊고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개의 모습도 방송됐다.

    이 영상을 찍은 일본인 프리랜서 기자는 개들에게 밥은 줬지만 묶여 있는 개를 풀어주지는 않았다. 일본인은 남의 물건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의식이 강해 묶여 있는 개를 선뜻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극한 상황에서도 평소의 원칙을 고수하는 일본의 특수한 문화 때문에 줄만 풀어주면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도 있을 개들이 굶어 죽고 있는 것이다.

    3·11 대지진 후 버려진 동물을 돕는 구호단체의 이사벨라 갈라온 아오키씨는 "원전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버려진 애완동물들이 굶어 죽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단체 회원들은 일본 정부가 주민들을 소개시킨 원전 반경 20㎞ 안으로 들어가 버려진 애완동물을 구하고 가축에게 먹이를 주는 일을 해왔다.

    이미 한 달 넘게 이 일을 해온 사람들은 그동안 방사성 물질에 노출됐기 때문에 앞으로 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아오키씨는 그러나 "이 동물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개인적인 위험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동물들을 구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주인들이 집 주소를 적어주며 구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하기도 한다"고 했다. 또 대피소에서 애완동물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주민들은 후쿠시마 근처에 두고온 자신의 애완동물을 찾아 동물 보호소에 맡겨 달라고 부탁한다고 했다.

    이토 히로코씨는 이 단체의 도움으로 다섯 살짜리 시바 종(種) '논'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논을 품에 안고 "논을 구하고 싶었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애완동물뿐 아니라 소·돼지 등의 가축들도 굶어 죽고 있다. 유튜브에는 원전에서 10여㎞ 떨어진 마을의 한 축사에서 10여 마리의 소가 굶어 죽어 쓰러져 있는 모습이 담긴 1분 40여초짜리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이 축사에 살아남은 소들은 이미 텅 비어 있는 구유 위로 목을 내민 채 먹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취재진이 물과 사료를 주자 한꺼번에 몰려드는 모습도 보였다. 축사에 드러누워 힘겹게 숨을 몰아 쉬고 있는 소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미나미소마(南相馬)의 한 축산 농가에도 굶어 죽기 직전인 돼지들과 폐사한 돼지들이 우리 밖으로 나와 바닥에 누워 있었다.

    비공식통계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인구 10명당 1마리꼴로 애완견을, 13명당 1마리꼴로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 소·돼지·닭 등의 가축까지 합하면 원전 반경 20㎞ 내에 최소 십수만 마리의 동물이 굶어 죽을 위기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일본 정부가 동물들에게 사료를 주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CNN은 전했다. 총리실부터 지방의 작은 관청을 포함한 일본 당국 어디에도 동물을 돕는 데 필요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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