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T-50 만들어내니… 무시하던 록히드 "우리가 잘못 봤다"

조선일보
입력 2011.04.13 03:04

[개발·수출 주역들]
초음속기 조기개발 성공하자 미국서 기술연수팀 보내와

장성섭 개발본부장(사진 왼쪽)과 박노선 수출본부장.
장성섭 개발본부장(사진 왼쪽)과 박노선 수출본부장.

국산 초음속훈련기 T-50의 수출 길이 열린 12일 오후. 장성섭(56)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개발본부장은 "T-50 공동 개발사인 록히드마틴 엔지니어들이 '당신들이 T-50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당시 무시당한 느낌이었지만 그때까지 우리 손으로 비행기 한 대를 만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록히드로선 그렇게 생각할 법했다"고 했다.

1999년 10월 삼성항공·현대우주항공·대우중공업의 항공 부문이 통합해 출범한 KAI의 기술진은 당시 국내 항공 기술진의 거의 전부였다. 록히드 기술진은 T-50을 개발하는 데 KAI가 계획한 기간의 두 배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한다. 장 본부장은 "그런 말을 듣고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지만 '한 번 해보자'는 오기로 똘똘 뭉쳤다"고 했다.

그 결과 1997년 본격 개발에 들어간 KAI는 불과 5년 만인 2002년 T-50 초도비행에 성공했다. 장 본부장은 "비행기를 처음 만드는 나라에서 5년 만에 초음속기 개발에 성공한 건 기적 같은 일"이라며 "록히드는 초창기 학생의 능력을 의심하는 '선생님' 같았는데, 이를 깨물어가며 배워 이뤄낸 성과였다"고 했다.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손민석 객원기자 kodef@chosun.com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손민석 객원기자 kodef@chosun.com
항공기 개발의 핵심인 설계 단계에서는 대부분의 엔지니어가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야근을 밥 먹듯 해가며 매달렸고 2명의 직원이 과로로 순직했다. 장 본부장은 "우리가 조기 개발에 성공하자 록히드는 그때부터 30대의 젊은 기술진을 KAI에 파견해 실무 경험을 시키기 시작했다"며 "이들 중에서 F-35 수석설계자도 나왔으니 T-50 기술진에서 배출된 셈"이라고 웃었다.

장 본부장은 "지금까지 해외에 수출하지도 못하는 애물단지를 만들었다는 외부의 비판이 가장 가슴 아팠다"고 했다. T-50은 훈련기 중 세계 최초의 초음속기였지만 번번이 수출 문턱에서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외국 경쟁 기종보다 10~20% 비싼 가격이었다. 장 본부장은 "해외 구매자들이 '신붓감(T-50)은 참 좋은데 혼수(가격)가 별로'라고 할 땐 혼수 때문에 딸을 시집보내지 못하는 못난 아비가 된 심정이었다"고 했다. 장 본부장은 서울대 항공공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삼성항공에 입사해 1992년 탐색개발 단계부터 지금까지 T-50에 매달려온 베테랑 엔지니어다.

KAI의 '한(恨)' 맺힌 수출 성사 임무를 짊어진 사람이 장 본부장의 서울대 항공공학과 2년 후배 박노선(55) 수출본부장이다.

박 본부장은 인도네시아의 협상 전략을 파악하고 T-50의 가격에 대한 인도네시아와의 의견차를 좁히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본부장은 지난 2월 이후 세 차례 2~3주씩 자카르타로 출장을 가서 선정 통보를 기다렸지만 인도네시아 당국은 '뜸'을 들였다. 지난달 말 청와대 관계자가 인도네시아 당국의 통보가 임박했다고 발언해 국내에선 기대감이 한껏 높아진 이후에도 박 본부장은 초조하기만 했다. 자카르타에서 대기 중이던 박 본부장은 12일 인도네시아 국방부로부터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드디어 그의 손에는 KAI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문서가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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