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 A모(41) 교수는 지난해 직장암 수술을 받았다. 건강 검진에서 시행한 대장내시경에서 암이 발견된 것이다. 의학 분야 최고 전문가인 그가 암 환자가 된 것이다. A교수는 "암이 의대 교수라고 비켜 가지 않더라"며 "수술로 암은 떼어냈지만 혹시나 또 다른 암세포가 있을까 불안감이 있다"고 했다. 그는 피우던 담배를 끊었지만 과체중 상태에서 고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B모(65) 교수도 폐암으로 한쪽 폐를 잘라냈다. 그는 진료와 수술 등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평소 건강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한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폭탄주 회식' 다음 날에도 새벽부터 병원에 나와 진료 업무를 보는 생활을 40년간 해왔다. 그는 "의사라는 직업이 건강을 가장 중요시하는 직업이지만 정작 내 몸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다른 대학병원의 C모(51) 교수는 위암으로 위 전체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몇 년 전부터 속 쓰린 증상이 있었으나 단순한 위염이려니 하고 위장약으로 증상만 가라앉혔다. 그러다 위암 2기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그는 하루 일과를 비우고 건강 검진을 받을 시간이 나지 않아 검사를 차일피일 미뤄 왔었다.


의대 교수가 일반인보다 암 발생 많아

종합건강검진에서 의대 교수에게서 암이 발견되는 비율이 일반인보다 3배가량 높게 나온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에서 최근 7년간 검진을 받은 서울대 의대 교수는 314명. 그중 10명에게서 암이 발견돼 암 진단율은 3.18%였다. 같은 기간, 같은 검사 항목으로 시행한 일반인 검진에서 암 진단율은 0.98~1.09%였다.

확률상으로 검진센터에 일반인 100명이 오면 그중 한 명에게서 암이 발견되는데 의대 교수 100명이 오면 3명에게서 암이 나오는 셈이다. '서울대 의대 교수 암'은 갑상선암·위암·폐암·직장암 등이었다.

사립대 S의대의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 15년 동안 S대병원 검진센터를 이용한 의대 교수는 709명. 이중 암이 발견된 교수는 26명으로 암 진단율은 3.67%이다. 같은 기간 일반인의 암 진단율은 평균 1%이었다.

이처럼 의대 교수들에게 암 발생이 많은 이유로는 우선 과도한 업무량과 스트레스가 꼽힌다. 진료, 수술, 연구 논문 작성, 의대생 수업, 학회 활동 등으로 하루 일정이 빡빡하다. 정기적인 운동 등 세심한 건강관리에 나서기 어려운 환경이다.

Y대 의대 교수는 "아침 7시부터 시작하는 진료회의에 참석해서 수술을 끝내고 회진 돌다 보면 저녁 10시에 업무가 끝나는 날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의대 교수의 음주와 흡연율도 일반인과 거의 같거나 조금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 따라 하지 말고, 의사가 시키는 대로만?

대장암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사립대 병원의 한 외과 교수는 회식 장소를 항상 고깃집으로 잡는다. 과도한 육류 섭취가 대장암 위험 요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고기가 입맛에 당긴다고 그는 말한다.

K대학병원 한 심장내과 교수는 외래 진료가 끝나면 담배를 꺼내 문다. 흡연하는 심장병 환자를 볼 때마다 당장 담배를 끊으라고 말하면서 정작 본인은 스트레스가 많아 담배 끊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한다. 두개골을 절개하여 뇌수술하는 지방 국립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나이 55세가 될 때까지 위 내시경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내시경 검사가 무섭다는 이유였다.

일부 의사들은 의학 전반에 대해 잘 안다는 과도한 자신감으로 자신의 증상을 과소평가하기도 하고, 질병과 관련된 확실한 증상이 아니면 이를 가벼이 여겼다가 암에 걸린 경우가 있다. 방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각종 병원 검사를 언제든지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질병 예방을 소홀히 하기도 한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조상헌(내과 교수) 소장은 "의사가 시키는 대로만 해야지 의사를 따라 하면 안 된다는 속설이 있다"며 "의사이건 일반인이건 방심해선 안 되며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고 적절한 운동과 휴식을 취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일봉 원장 "암환자가 죽는 건 죽음의 공포 때문"
담배피는 의사들, 금연 못하는 진짜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