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민 연세대 교수 심리학

인재를 키워내야 할 명문대학에서 학생들이 인생을 접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카이스트의 경우 징벌적 등록금 제도, 영어강의 부담, 경쟁위주 학점관리, 학생들의 부족한 인내심, 총장의 일방적 개혁과 소통 부재 등 많은 이유가 언급된다. 서울대나 연·고대, 포항공대 등 여러 대학이 비슷한 상황에 있는데 카이스트는 왜 다른 대학보다 더 심각한가? 그것은 바로 국가 관리에 의한 과학영재 양성이라는 카이스트의 정체성 때문이다.

창의성과 수월성을 찾아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과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서남표식의 개혁과 변화는 과거의 성공 방식이 현재의 우리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쩌면 그의 방식은 인도의 벵골대학에서는 가능했을지 모른다. 헝그리 정신으로 살아야 했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세대의 한계이다. 초근목피(草根木皮)의 빈곤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선진국 미국을 무작정 동경했던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을 보면서 '미친 듯이 공부해도 갈 길이 아직도 먼데, 무슨 심약한 모습인지 딱하다'라고 생각한다. 반면 학생들은 소통의 부재와 답답함을 느낀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한 과학영재의 양성은 후진국에서 빨리 선진국이 되기 위한 우리의 '필살기(必殺技)'였다. 한곳에 모아 놓고 죽기 살기로 훈련시켜 올림픽 금메달을 따게 하는 방식과 같다. 하지만 속박하고 독촉하고 밀어붙이면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는 사고방식은 이제 오히려 영재들을 둔재로 만들고 있다. 더 공부하게 만들려고 '장짤(학점이 낮아 장학금이 잘리는 경우)' 방식을 도입할 때 공부를 더 혐오하고 두려워하게 만든다는 기본적인 인간심리에 대한 이해조차 없었다. 처벌은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게는 하지만, 바람직한 행동을 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대학생들의 자살 문제는 정신건강이나 인성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성적을 통한 경쟁이 고등학교 교육을 망쳤듯이, 우리 대학도 동일한 길을 가고 있다. 대학이 지식전달의 사설학원이 되고 순위경쟁으로 내달리면서, 교수도 논문 건수 채우기로 내몰리고 있다. 성공하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믿었던 기성세대는 이제 가라. 선진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후진국 상황에서 공부했던 기성세대와 다르다. 그들은 먼저 '무엇을 위해 공부하느냐'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의 문제를 스스로 알게 된 연후에 하고 싶은 공부를 하려 한다. 스스로 수긍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미있고 즐겁게 공부하려 한다. 이는 배부른 젊은이의 한가한 타령이 아니다. 서남표 총장은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소방 호스처럼 쏟아지는 물'을 받아 마시듯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그는 깔끔한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음미하듯 마시는 요즘 젊은이를 이해하기 힘들다.

세계 100위권, 아니 10위권 대학에 속한들 무슨 소용일까?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나라에서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겪고 있다. 드라마 '카이스트'를 보고 자신이 꿈꾸고 희망하는 일이 실제 일어나기를 기대했던 학생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대학개혁의 목표는 학생들을 점수를 위한 경쟁으로 모는 일은 아니다. 지금 카이스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이제 더 이상 죽기살기식 과학인재 양성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준다.

[천자토론] '카이스트 사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