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A고등학교 1학년 이모(17)양은 요즘 수학 수업을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다. A학교는 올해 1학년 1학기에 수학 상·하를 다 가르치고 2학기에는 수학1 진도를 나갈 계획이다. 과거 같으면 2년에 걸쳐 배우던 것을 1년에 몰아서 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수학 수업만 8시간. 이양은 "진도가 너무 빨리 나가서 이해하기 힘들다"며 "원래 좋아하지도 않던 수학이 더 싫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학-과학-영어-수학-국어-도덕-음악'. 부산 B고등학고 1학년 강모(17)군의 수업 시간표는 일주일 내내 거의 비슷하다. 도덕과 음악을 일주일에 4시간씩 배우고 강군이 좋아하는 미술과 사회는 1시간도 없다. 강군은 "같은 것만 배우니 너무 지겹다"며 "(몇 과목을 몰아서 수업하니) 시험 범위가 너무 많아진 것도 힘들다"고 했다.

올해부터 초1·2, 중1, 고1 학년에 적용되고 있는 '집중 이수제'에 대한 학생·학부모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집중이수제는 학생들이 동시에 배우는 과목 수를 줄여 학습 부담을 덜어주고 학습 효율을 높이겠다는 이유로 도입됐다. 특정 과목을 특정 학년이나 학기에 몰아서 배우게 한다.

하지만 이 제도가 시작된 이후 각 학교에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과학이 집중이수과목에 포함된 인천의 한 중학교 1학년들은 1년에 배울 과학 과목 분량을 한 학기에 다 배워야 한다. 교과서 내용을 삼등분해 3명의 교사가 동시에 진도를 나가는 식이다. 이 학교 김모(14)양은 "앞부분 쉬운 내용과 뒷부분 어려운 내용을 한꺼번에 배우니까 이해가 잘 안 된다"며 "선생님께 '잘 모르겠다'고 말했더니 '그냥 외우는 수밖에 없다'고 해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학부모·학생들 사이에선 '성적(成績) 시비'도 생겨나고 있다. 대구의 C고등학교는 올해 사회를 집중이수과목으로 택했다. 그런데 사회 교사가 부족해 1학년 중 홀수반은 1학기에, 짝수반은 2학기에 가르칠 예정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선 "시험을 늦게 보는 짝수반이 유리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이 학교 박모 교사는 "시험이 끝나면 학생·학부모들의 민원이 쏟아질 것 같다"며 "우리 입장에서도 최대한 시험을 공평하게 내려고 하지만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집중이수제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도 있다. 한 과목에 하루 2~3시간씩 충분한 시간을 주면 과학 실험이나 미술 실기, 토론 수업 등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단시간에 집중해 배우면 몰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경남 김해 지역 중학교 김민주 교사는 "외국엔 한 학기 내내 '공룡'이라는 한 주제에 파고들어 심화학습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깊이 있게 사고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외국과 다르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입시 제도, 교육 과정 등이 외국과 다른 상황에서 무조건 선진국(미국·영국 등)처럼 과목 수만 줄이다 보니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서울 대방중 이창희 교사는 "도덕 같은 경우 교과 내용이 학생들의 발달 단계와 연계되는데, 한꺼번에 몰아 배우면 단계별 습득이 힘들다"고 말했다. 20년 경력의 김모(사회 담당) 교사는 "과목 수만 줄여주면 학습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발상은 현장을 모르는 소리"라며 "학생들의 학습부담은 거의 비슷하거나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집중이수제

올해부터 초·중·고교에 적용되는 새로운 수업 편성방식으로 각 학교가 과목별 수업시기를 자율적으로 편성해 한 학기에 8과목 이내에서 수업을 하도록 했다. 수학·국어·음악·체육 등 각 과목을 3년 가운데 특정 학년에 몰아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