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악의 축'으로 여겨온 이란과 미국의 중동 안전판 역할을 했던 이집트가 30여년 만에 외교 관계 복원에 나섰다. 1979년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은 후 단절됐던 양국 관계가 이집트의 친미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지난 2월 물러난 후 급격히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신호탄이다. 반서방 시아파 대(對) 친서방 수니파 무슬림 국가로 양분돼 온 중동·북아프리카의 정세가 '아랍의 봄' 이후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조짐이다.

◆"이집트와 이란의 새 장을 열었다"

이집트 나빌 엘라라비 외교장관은 4일 이집트를 방문한 이란 외교관 무그타비 아마니와 만난 후 기자회견을 갖고 "이집트와 이란의 역사와 문명을 고려할 때 양국 국민들은 상호 관계를 수립할 자격이 있다. 모든 국가에 열려 있는 이집트는 이란과 새 장을 열게 된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무바라크 축출 이후 이집트 외교 노선의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전했다. 이란의 아마니는 "이란 외교장관의 이집트 방문, 혹은 이집트 외교장관의 이란 방문을 시작점으로 삼아 양국 간의 상호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원한다"는 이란 외교부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집트와 이란은 32년 전 외교 관계를 단절한 이후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란은 이집트가 1979년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는 평화조약에 서명하자 단교(斷交)를 선언했다. 이후 이란은 시아파 무슬림 국가의 종주국으로 서방과 대립각을 세웠고, 수니파 무슬림이 많은 이집트는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친서방 노선을 걸었다. 미국은 본격적으로 핵개발에 나선 이란을 2002년 '악의 축'으로 지목했고, 무바라크의 이집트는 미국의 중동 '발판' 역할을 했다.

◆친미 무바라크 축출 이후 급격한 관계 개선

이집트와 이란의 외교 재개는 양국 관계를 넘어 중동, 나아가 세계 정세에 큰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중동·북아프리카는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며 서방에 적대적이었던 시아파 국가들과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미국 중동 정책의 지렛대 역할을 해온 수니파 국가들로 양분돼 있었다. 시아파 종주국은 시리아·레바논을 이끄는 이란이다. 수니파의 대표는 막대한 '오일 머니'로 무장한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아랍권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이집트였다. 양측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가운데 두고'중동의 냉전(冷戰)'이라고 불리는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 왔다.

오랜 기간 적대 관계였던 이집트와 이란은 대표적 친미 인사였던 무바라크의 축출을 계기로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 무바라크 이후, 이집트의 권력이 서방을 배제하는 이슬람주의 손에 넘어갈까 우려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심히 우려되는 조짐이다. 이집트 새 정부는 지난 2월 무바라크 축출 직후 이란 군함 두 척의 수에즈 운하 통과를 허락해 주목을 받았다. 이란 군함이 이 운하를 통과한 것은 32년 만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도발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집트-이란, 필요에 따른 양보…'해결 과제'는 남아

이란·이집트가 실제로 외교 관계를 복구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걸림돌이 많다. 이집트 외교부는 4일 이란과의 대화 재개를 발표하면서 "이란 수도 테헤란에 있는 '칼리드 이슬람불리가(街)'의 이름을 바꾼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칼리드 이슬람불리는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한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을 1981년 암살한 이집트군 장교 이름이다.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란과 이집트의 미래는 명백하고 건설적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칼리드 이슬람불리가'에 관한 이집트 정부의 요청에 대해선 "양국 국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는 조건을 걸 필요가 없다"라고 거절했다. 

♣ 바로잡습니다

▲6일자 A21면 '이집트-이란 외교 관계 일지'에서 '무바라크 퇴진' 연도와 '이란-이집트 외교관계 재건 발표' 연도는 모두 2010년이 아니라 2011년이므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