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적립금이 곧 바닥을 드러낼 위기에 처한 가운데 법제처가 최근 공무원들의 복지포인트·월정(月定)직책급 등에 대해 "건강보험료 산정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공무원들은 건보료를 지금보다 월 2만~3만원 덜 내게 됐다.
그러나 건강보험공단은 일반 회사원들에게는 공무원의 '월정직책급'에 해당하는 직책수당과 복지포인트 등을 보수(報酬)에 합산시켜 건강보험료를 내도록 해 "회사원만 봉이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제처는 지난달 10일 보건복지부에 보낸 공문에서 "복지포인트는 급여가 아니라 복리후생에 쓰이는 경비여서 건강보험 산정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법제처는 공무원들이 받는 월정직책급과 특정업무경비에 대해서도 "공무원 보수규정이 아니라 예산지침에 따라 지급하는 돈으로, 특정 직책이나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금액을 보전해주는 실비변상(실제 사용한 비용을 보전해 주는 의미)적 성격의 경비"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법제처 논리대로라면 회사원들의 복지포인트와 업무추진비도 당연히 건보료 산정 대상에서 빼주는 것이 맞다"며 "공무원과 일반 직장인의 형평을 맞추지 않으면 저항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의 핵심은 복지포인트 등이 보수의 일부인지 아닌지 여부다.
건보료는 매월 받는 보수에 일정 요율(올해의 경우 5.64%)을 곱해 산정하고 있다. 따라서 보수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하느냐에 따라 매달 내는 건보료가 달라지는 것이다.
복지포인트는 전 공무원에게 중앙부처의 경우 연평균 55만원씩 지급하고 있고, 지자체의 경우 서울시는 1인당 연평균 173만원씩, 부산시는 최고 145만원까지 지급하고 있다. 월정직책급은 과장급 이상 직책을 가진 공무원들에게 매월 30만~75만원씩 지급되고, 특정업무경비는 각 기관의 수사·감사·예산 등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에게 주는 수당이다.
법제처 해석은 이런 돈이 공무원 보수규정이 아니라 예산지침 등에 의해 지급되고, 명목이 복리후생 또는 업무를 위한 것이므로 경비이지 보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공무원들은 "월정직책급은 급여의 일부로 생각하기 때문에 부서 운영비로 쓰는 공무원은 없고, 복지포인트의 경우 사용에 약간의 제약은 있지만 추가로 받는 급여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건강보험공단은 회사원·공무원 차별 없이 모두 보수에 포함시켜 왔다. 그러나 상당수 정부 부처가 "복지포인트·월정직책급 등은 보수가 아니라 경비"라며 건보료 계산에서 이를 제외시키는 일이 잦았다. 건강보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이번에 유권해석을 내린 법제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건보공단은 지난해 공무원 사업장 1491곳을 임의로 선정해 건보료 납부 실태를 점검, 전체의 77%(1146곳)에서 월정직책급·복지포인트를 건보료 산정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75억원을 환수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같은 논란이 일자 지난해 말 복지부가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는데, 법제처가 공무원에 유리한 해석을 내린 것이다.
법제처 해석에 따라 중앙부처 4급 공무원의 경우, 복지포인트 연간 55만원과 월정직책급 40만원 등이 보수에서 빠져 이달부터 건보료를 월 2만5000원 정도를 덜 내게 됐다. 건보공단은 전국 각 지사에 복지포인트와 월정직책급 등은 공무원 보험료 산정에 포함시키지 말고, 이의신청이 들어오면 지금까지 환수한 금액을 환불해주라는 지시를 내렸다. 건보공단은 공무원 보수에서 복지포인트 등을 뺄 경우 줄어드는 건보료가 매년 811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건보공단은 "건보료나 과세대상 산정에서 급여 명목이 어떻든 그 실질 내용에 따라 판정해야 한다는 것은 대법원 판례(2005년 4월)에도 나와 있는 것"이라며 "관련 법조항을 고쳐서라도 공무원과 일반 직장인의 형평성을 맞추지 않으면 혼란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