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39·사진)씨가 쓴 자서전 '4001'의 내용 중에는 사실도 있지만 일부는 허구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대표적인 게 신씨가 언급한 외할머니 부분. 신씨는 책에서 "외할머니가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똘똘한 손녀가 있으니 한 번 지켜봐 달라'면서 나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소개했다"고 적고 있다. 또 "외할아버지는 재야운동을 하셨고, 외할머니는 당시 '신여성'으로 불리던 여성 지식인이었는데, 부모 반대로 부부가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외할머니는 엄마를 낳았고 먼 친척댁에 맡겼다"며 "엄마를 키워준 부모가 비록 친부모는 아니었지만 실제 부모가 대단한 분들이었기에 엄마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컸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에게 신씨를 소개한 실제 외할머니가 누구인지 관심이 쏠렸다. 전직 대통령과 혼인 전에 재야 인사와 사귄 적이 있던 전직 대통령의 부인을 지칭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고, 이에 대한 취재진의 문의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신씨와 신씨의 모친이 자란 경북 청송에서는 "신씨의 외조부모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청송 출신 이동팔씨와 그의 셋째 부인 권분순씨가 정아 엄마의 생부 생모"라는 증언이 이어졌다. 신씨의 모친이 유력 인사의 '사생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이 맞다면 신씨는 책을 통해 외할머니의 존재를 부풀렸거나 엉뚱한 인물을 외할머니로 둔갑시킨 셈이 된다.
◆청송 고향 "신씨 외할머니는 이동팔씨 셋째 부인"
신씨의 어머니 이원옥씨는 1946년생으로 호적엔 이동팔(작고)씨가 아버지로 되어 있다. 이동팔씨는 일제 강점기부터 사법서사를 지낸 청송군의 지역 유지였다고 그의 친척들은 전했다. 이씨 옆집에 살았다는 한 노인은 "당시 사법서사는 요즘 변호사보다 훨씬 힘이 셌다. 이씨는 풍채 좋은 호남형으로 자유당 시절에도 잘 나갔다"며 "그는 술을 한턱 내더라도 강가에 솥을 걸고 마을 장정을 모두 불러 돼지 몇 마리 잡을 정도로 통이 컸다"고 했다.
이씨에겐 부인이 세 명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 부인은 청송읍 월외리에서 일꾼 두 명을 데리고 농사를 지었는데 딸을 계속 낳았고, 이어 맞아들인 둘째 부인 최모씨에게선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새로 들인 '작은 부인'이 권분순씨였다. 당시 권씨는 30대 중반이었는데 그 역시 이동팔씨가 자신의 세 번째 남편이었다고 한다. "권씨는 첫 남편 황모씨 사이에서 아들들과 딸을 낳았고, 두 번째 남편 김모씨에게서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두 번째 남편이 일찍 죽자 그의 본부인이 (첩이었던) 권씨를 사법서사로 힘 있던 이동팔씨에게 시집을 보냈다"고 이씨의 한 일가는 말했다.
그리고 권씨는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딸을 낳았는데, 바로 신정아씨의 모친인 이원옥씨라는 것이다. 이동팔씨의 한 친척은 "당시 권씨가 딸을 낳자 자식이 생기지 않았던 이씨의 둘째 부인이 말도 못하게 권씨를 시샘했다. 남편이 자기 집에 찾아 와도 문안에 발도 못들여 놓게 막았을 정도"라며 "원옥이 낳는 장면을 직접 보진 못했으나 권씨가 배불러 다니고 나중에 업고 젖 먹이는 걸 모두 지켜봤다"고 했다.
이씨는 '정실'에게서 얻은 자식은 아니었지만 원옥씨를 매우 귀여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권씨와 둘째 부인은 호적에 올리지 않았으나 원옥씨는 자신의 딸로 호적에 올렸다고 한다. 마을 주민은 "이씨는 늙어서도 원옥이를 끔찍하게 챙겼다"며 "한 번은 시집간 원옥이가 계를 하다가 문제를 일으켜 사위가 찾아오자 동생이 키우던 소까지 팔아 돈을 마련해줬을 정도"라고 했다.
이동팔씨가 죽자 셋째 부인인 권씨는 원옥씨 대신 첫 남편측에 자신을 의지했고, 2000년 6월 11일 9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묘는 청송읍 청운리 첫 남편 황모씨의 무덤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이동팔씨와 권씨를 기억하고 있는 현지 노인들은 "원옥이 부모가 따로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생부 생모가 아니라면 딸에게 그렇게 잘 해주지 않았을 것" "딸을 다른 데서 업어왔다면 권씨가 그토록 시샘을 받았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신정아씨는 책에서 "(엄마를) 직접 키우진 못했지만 외가에선 멀리서 물질적·정신적 뒷받침을 해줬다" "엄마가 결혼한 후에도 외할머니가 몰래 (청송을) 다녀가셨다" "성인이 되어 외할머니와 가까워지게 됐고 어쩌다 사람 눈을 피해 차에서 외할머니와 데이트를 했다"고 썼다. "아주 기분이 좋으신 날에는 외할머니의 '찌찌'를 만지면서 '건포도'라고 놀리기도 했고, 그런 모습을 보고 밖에 있던 기사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봤다"는 자세한 묘사가 담겨 있다.
◆"신정아 책에 나온 생모 얘긴 처음"
청송 현지에선 원옥씨의 성장 과정이나 성격을 알고 나면 신씨가 자서전에서 언급한 '엄마의 생모'가 따로 있진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원옥씨는 어려서부터 '튀는' 여자였다고 한다. 원옥씨와 같은 마을에서 자랐다는 한 주민은 "집이 부자여서 그런지 옷 입는 거나 먹는 게 다른 아이와 달랐다"면서 "대구에서 고등학교 다니다 청송으로 전학 왔다 다시 서울로 전학 가는 등 학교생활이 정상적이지 않았다"고 했다. 원옥씨는 대구 경상여상을 다니다 진보농고를 거쳐 서울 보성여고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의 책에는 "영화배우 최무룡과 김지미가 부부로 살 때 고등학생이었던 엄마가 그 집에서 지낸 적이 있다고 한다. 김지미씨가 영화배우를 해보라고 추천했을 만큼 우리 엄마는 발군의 미인이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현재 미국LA에 거주 중인 김지미씨는 전화 통화에서 "당시 여학생이 와 있은 적이 없다. 더욱이 누구에게도 배우 하라고 권한 적이 없다"며 신씨의 책 내용을 부인했다.
원옥씨는 진보농고 다니던 시절 진보면 부잣집 아들 신희태(작고)씨를 사귀기 시작했고 스무 살 되던 1966년 임신 중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해 맏아들을 출산했고 1968년과 72년에 각각 둘째 아들과 신정아씨를 낳았다.
한 이웃 주민은 "원옥이는 어릴 때나 나이가 들어서나 씀씀이가 컸고, 자식들도 값비싼 제품으로 치장을 시켰다"며 "남편 신씨가 죽고(1994년)난 뒤부턴 정치에도 관심이 많아 선거 때면 남 앞에 나서길 좋아했다"고 했다. 원옥씨는 지금도 청송군 한나라당 지역 간부를 맡고 있다. 원옥씨 부부와 어려서부터 잘 알고 지냈다는 한 주민은 "이원옥씨는 정말 대단한 여자다. 없을 땐 안 좋은 소리를 하던 이웃들도 그가 나타나면 찍소리 못한다"며 "수완 좋고 싹싹한 면도 있지만 자기에게 밉게 보이면 무섭게 변한다"고 했다.
그런 원옥씨에게 신씨의 책에 언급된 '대단한 생모'가 있었다면 자신이 먼저 얘기를 꺼냈거나 그 사실을 부각시켰을 것이라고 이웃들은 입을 모았다. "원옥씨와 60년 알고 지냈다"는 한 주민은 "원옥이에게 대단한 엄마가 따로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 그랬으면 누구에게라도 벌써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했다. 청송군의회 관계자도 "이원옥씨의 생모가 영부인 같은 분이었다면 그 정권 시절 청송에 총리가 3명쯤 나왔거나 민주당 임시 정부가 차려졌을 것"이라며 "원옥씨가 그런 '호재'를 가만히 묻어둘 사람이 아니다"고 했다.
신정아씨 책에 '외가에서 어려서부터 외제 물건과 예쁜 원피스가 있는 선물을 보내줬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하자 원옥씨의 이웃 주민은 웃으면서 "엄마(원옥)가 준 선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면 주민들 사이에선 원옥씨가 도시에 나갔다 올 때마다 스카프나 화장품, 명품 등을 보따리로 사 가지고 와 마을 사람들에게 팔았고, 그 장사로 돈을 좀 벌었던 적이 있다며 신씨가 그런 부분을 연상해 책을 쓴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신씨는 "엄마가 결국 축복받지 못한 운명으로 먼 친척댁에 맡겨져야 했다"고 했으나 막상 이동팔씨의 친척들은 "일가 중에 재야운동을 했거나 '신여성' 출신 유력 인사 친척은 없다"고 말했다. 신씨 외할머니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전직 대통령 부인의 경우 전주 이씨이고 이동팔씨는 경주 이씨로 본관이 다르다.
결국 신정아씨의 자서전에 의해 '유모 부모'가 되어버린 이동팔씨의 현존하는 친척과 현지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신정아씨가 책에서 밝힌 외할머니는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지 더 헷갈리게 될 뿐 아니라 내용 자체가 거짓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게 된다.
현지의 증언처럼 신씨의 외할머니가 권분순씨가 맞다면 권씨는 신씨의 책에 소개된 '신여성'이나 현직 대통령에게 손녀를 소개할 정도의 실력자와는 거리가 먼 시골 부잣집의 셋째 부인으로 이미 2000년도에 사망했다.
◆입 다문 신정아씨 가족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신정아씨와 그의 오빠들, 이원옥씨를 상대로 가족관계 확인에 나섰으나 이들 대부분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신씨는 "엄마와 외할머니 관계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말아달라"고 했다. 신씨는 당초 자서전 초고에는 외할머니를 실명으로 거론했다가 이후 법률 검토 과정에서 익명 처리했다. 신씨는 초고에 등장하는 외할머니가 누구였는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고 있다. 자서전을 검토했던 변호사는 "외할머니 부분을 통째로 빼는 방법도 검토했으나 사실이라면 익명으로 나가는 게 낫다고 봤다"며 "신씨보다는 모친에게 생모를 확인해보라"고 했다.
이원옥씨는 지난달 29일 저녁 청송군 한 사찰을 찾은 기자에게 "정아 엄마는 서울에 가고 없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면서 출입문을 닫았다. 경북 안동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신정아씨의 둘째 오빠 역시 학원을 찾은 기자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그는 "어떤 이야기도 나누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둘째 오빠는 동생의 학력 위조사건이 불거진 직후 자신도 안동 학원가에서 학력을 과장하고 다른 사람 행세를 하고 다녔다는 의혹이 제기돼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고 주변 학원 원장들이 전했다. 대기업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신씨의 첫째 오빠는 부하 직원을 통해 "출장 가서 당분간 연락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자에게 회신했다.
한편 신씨의 외할머니로 거론됐던 전직 대통령의 부인측에선 "터무니없는 내용"이라고 밝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