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스물아홉 해 짧은 삶 남기고 배호가 떠난 지 40년…

조선일보
  • 석남준 기자
    입력 2011.03.26 03:03 | 수정 2011.03.26 20:42

    '돌아가는 삼각지'는 오늘도 돌아간다
    팬클럽회원 국내외 3만명… 노래비 세우고 평전 내고 여전히 변함없는 사랑 쏟아

    엘비스 프레슬리가 세상을 떠난 지 34년이 흘렀지만 수많은 팬들은 여전히 그를 그리워한다. 추모공연이 잇따르고 그와 관련된 상품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한국에도 세상을 떠난 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팬들의 가슴을 떠나지 않은 스타가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더 일찍 세상을 떠나 올해로 타계 40주기를 맞게 된 가수 배호(1942~1971)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중국에서 태어난 배호는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해방 후 조국땅을 밟았다. 가난한 삶을 살던 배호는 1963년 스물한 살의 나이에 가수로 데뷔했다. 배호가 대중 스타로 우뚝 올라선 것은 1967년 '돌아가는 삼각지'를 발표하면서다. 이 노래는 5개월 연속 '방송 인기가요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이후 발표된 40여곡도 연속 히트했다. 그러나 1966년 신장염을 앓기 시작하며 배호의 전성기는 병마와 함께했다. 그에 대한 행방불명설과 사망설이 수시로 나돌 정도였다. 사회자의 등에 업혀 노래하기도 했으며, 무대에서 각혈까지 하며 중도 퇴장하기도 했다. 그러던 배호는 결국 1971년 세상을 떠났다.

    3대 독자로 태어난 배호에게 남아 있는 직계 혈육은 아무도 없지만, 그 자리를 팬들이 메우고 있다. 현재에도 수십 개에 달하는 배호의 팬클럽이 활동 중이다. 배호의 유족들이 참여한 팬클럽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은 16개 시·도에 지부가 있다. 국내 조직뿐 아니라 미주 6개 지부와 중국·일본·호주·칠레 등 13개 해외 조직도 있다. 이 팬클럽 정법현(54) 사무총장은 "팬클럽 회원 수는 현재 3만명 정도"라며 "주축이 되는 50대 이상은 물론이고 20대 회원도 있다"고 했다. 그는 또 "팬들의 직업도 정치인, 군인, 경찰, 농부, 주부 등으로 각양각색"이라며 "모든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가수가 배호"라고 했다.

    배호가 타계한 지 40년이 흘렀지만, 배호의 팬들은 그를 보내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배기모 인천지부 회원들이 송년회를 하며 함께 어울려 배호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 인천지부 제공
    배호 팬클럽은 지부별로 매달 한 차례씩 모임을 갖는다. 묵념으로 시작하는 모임에서는 배호에 대한 이야기와 배호 관련 사업이 논의된다. 정 사무총장은 "배호의 유품을 정리한 박물관을 만들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매년 여름에는 주문진에서 가요제를 열며 회원들이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기도 하고, 연말에는 전국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송년회를 한다. 정 사무총장은 "노래방에 가면 배호 노래 이 외의 노래는 부를 수 없는 룰도 있다"고 했다.

    배호의 팬들은 불세출의 가수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그가 남긴 노래 중 '돌아가는 삼각지', '두메산골', '파도', '마지막 잎새' 등은 전국 각지에 노래비(碑)로 남겨져 있다. 이 중 3개가 팬들이 낸 성금으로 마련된 것이다. 배호 가요제도 매년 열리고, 소설가인 한 팬은 배호평전을 출간하기도 했다. 정 사무총장은 "2009년에는 회원들의 성금을 모아 CD 10장짜리 '천상의 가수 배호' 전집을 발매했다"고 했다.

    팬들은 배호의 묘소도 관리하고 있다. 경기도 장흥에 안치돼 있는 배호의 묘는 장기간 무연고로 방치돼 왔다. 관리사무소로부터 계속 그대로 놔둘 경우 파묘(破墓)된다는 소식을 접한 팬들은 십시일반으로 묘소 관리미납분과 향후 선불금을 선뜻 지불했다. 정 사무총장은 "회원들은 배호의 묘뿐 아니라 같은 병을 앓던 배호의 여동생 병원비를 내고, 장례식까지 치른 후 배호 옆에 안장했다"고 했다.

    타계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배호의 인기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팬, 평론가별로 갖가지 의견이 있지만 입을 모아 "배호는 다른 가수와 달리 특별하다"고 했다. 정 사무총장은 "배호는 병을 앓으면서도 꿋꿋이 노래를 불렀다"며 "힘든 삶을 겪는 모든 이들에게 울림을 주기 때문에 인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49)씨는 "배호는 짧은 시간 동안 최후의 불꽃을 뿜어냈다"며 "정상의 순간에 비극적인 요절을 한 게 팬들의 가슴에 강렬하게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배호를 추억하는 공연도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열흘간의 공연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천변카바레'가 지난 22일부터 3주간 공연되는 것. 우현정 뮤직웰 대표는 "배호의 목소리는 서민들의 심정을 대변한다"며 "진정성 있는 음악의 생명력은 끝이 없다는 걸 배호가 증명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배호는 '영시의 이별'이란 곡에서 "너와 나의 주고받는 인사는 슬펐다. 울기도 안타까운 잊어야 할 아쉬움. 원점으로 돌아가는 영시처럼 사랑아 안녕"이라고 했다. 그러나 배호는 그가 살다간 29년의 삶보다 훨씬 오랫동안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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