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의 '잡역부대', 누구이며 왜 원전으로 갔나

입력 2011.03.24 17:38 | 수정 2011.03.24 17:45

방사선이 누출되는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모든 영광은 소위 ‘후쿠시마 50 결사대’라는 기술자들과 소방수들, 군인들의 몫이다. 하지만 방사선이 쏟아지는 현장에서, 파이프를 나르거나 잔해물을 치우거나, 다른 맨손 노동 등 잡일(grunt work)을 떠맡는 수백명의 ‘눈에 덜 띄는’ 잡역부들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 ‘원자로 전투의 이면, 잡역부 부대’라는 기사를 통해 이들이 처한 상황을 상세히 소개했다.

후쿠시마 원전의 근로자들/출처=월스트리트저널

◆“두렵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
도쿄전력의 협력업체인 도카이도장(東海塗装) 소속 보호막 코팅 기술자 겐지 타다(29)씨는 “솔직히 두렵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상시 원자로 장비의 부식된 부분을 찾아내 코팅을 하던 일을 맡아왔다. 하지만 21일부터 수백명의 근로자들과 함께 시설 내 작업 대기조에 편성됐다. 이들 가운데는 일부만이 기술자들이거나 시스템 운영 전문가들이다. 나머지는 전선을 끌어오고, 냉각수 파이프를 연결하고, 과열된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지상에서 육체노동을 한다.

그래서 이들이 현장에서 하는 일은 겉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외부인과의 접촉도 거의 없다. 일부는 발전소 주변 대피구역 끄트머리에서 머물고 있다.

둥근 얼굴에 검은 테 안경을 쓴 타다 씨는 부드러운 말씨로 “같이 일하는 동료가 전화를 걸어와 ‘지금 현장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펌프를 배치하고 있으며, 방사선 수위는 그리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후쿠시마 원전의 근로자들/출처=AP연합

◆월급 270만원, 추가 수당 ‘0’… 대부분 低 학력자들
도쿄전력을 포함해 후쿠시마 제1원전에 근로자를 파견한 회사들은, 이들에게 기존의 상해·질병 보험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특별 수당이나 혜택을 주지 않는다. 회사들은 “그런 것을 고려하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다”고 말하고 있다.

근로자들 역시 “이런 국가 위기 상황에서 돈을 더 달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도카이도장의 타다시 이케다 전무는 “돈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근로자 대부분이 방사선 수치 때문에 고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이 지역 토박이로, 삶의 터전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열성적으로 일을 돕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타다 씨의 통상 월급은 20만엔(약 275만원). 일본의 평균 월급인 29만1000엔(400만원)에도 못 미친다. 그는 “어머니가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기술학교 출신인 타다 씨처럼, 이번 일에 나선 수많은 근로자는 저(低)학력자들이다. 그들의 ‘핵심 기술’이란 고작 방사선이 쏟아지는 환경에 익숙하다는 것 정도. 하지만 21일 이들이 일한 장소에서는 평상시의 3만배가 넘는 시간당 2000마이크로시버트의 방사선량이 측정됐다. 이 수치는 24일에는 200마이크로 시버트를 살짝 웃도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실, 이번 사태 초기 원자로 냉각 작업의 운명을 걸머졌다며 ‘후쿠시마의 50 결사대’로 불렸던 60명의 핵심 인력들은, 강력한 방호 시설이 갖춰진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장 책임자가 이끄는 이들 핵심 매니저들은 통제실을 운용하고 원자로 계기판 수치를 읽을 뿐 건물 밖으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소방수에서 전선작업자까지, 나머지 인력들은 주어진 임무가 끝나는 즉시 현장에서 빠져나오고, 방사선이 거의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머문다.

하지만 이들 근로자의 숙소는 원전에서 12마일(19.3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정부가 그어놓은 대피선(線)보다는 밖에 있지만, 후쿠시마현이 발표한 대피선보다는 안쪽이다.

23일, 도쿄전력은 직원 330명을 원전에 투입했다. 또 도카이도장처럼 ‘협력사’라고 부르는 회사 직원 224명도 함께 파견했다.

타다 씨는 일본의 ‘원전 생태계(eco-system)’에서 중간쯤 속하는 반(半)숙련 기술자에 해당한다. 원전 생태계 아래로는 일용직 근로자가 있고, 꼭대기에는 도쿄전력이나 도시바, 히타치 등에 소속돼 원자로를 운영하는 기술자들이 있다.

근로자들은 방호복과 마스크를 끼고, 방사선 누출 환경에서 행동하는 요령을 교육받았다. 개개인은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두 개의 배지(badge)를 부착한다. 이번 사태에 한해 근로자의 방사선 노출 허용한도는 10만마이크로시버트에서 25만마이크로시버트로 상향 된 상태. 25만마이크로시버트는 ‘소량 피폭’(low-dose exposure)에 해당한다.

하지만 타다 씨는 “현장에 투입된 동료가 5시간 일했는데 ‘X레이 한 방’에 해당하는 100마이크로시버트 밖에 쐬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예전에 4시간 만에 190마이크로시버트에 노출된 적도 있다”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의 근로자들/출처=AP연합

◆“내가 대신 갈 수 있다면”… 애끓는 父情
모두가 타다 씨처럼 복구에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 주변마을 주민들의 임시 대피소로 활용되고 있는 ‘사이타마수퍼아레나’의 미츠요시 오이가와(70)씨는 “현장에 투입된 아들이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오이가와씨는 지진이 난 지 6일 만에 연락이 왔고, 그의 아들이 현장에서 2~3일 일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오이가와씨는 “아들과 연락조차 잘 닿지 않는다. 아들이 방사선에 노출된 뒤 병에 걸릴까 두렵다”고 했다.

“내가 아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내가 대신 가면 좋으련만….”

원전에서 서쪽으로 20마일(32km) 떨어진 피난 캠프에서는 또 다른 근로자가 원전으로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원자로 3호기에서 파이프를 나르고 설치하는 일을 맡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고졸인 이 근로자의 급여 수준은 타다씨와 비슷하다. 그는 “회사에서는 하기 싫으면 거절해도 좋다고 했지만, 나는 내가 나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부름을 받으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다. ‘예, 가겠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카미카제(神風·2차대전 당시의 자살특공대)를 떠올린다. 내 마음은 고요하다.”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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