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릴레이 현장 칼럼] [3] '살고 싶다'가 살렸다

입력 2011.03.23 23:30

김진명 정치부 기자
'인공(人工)은 결코 자연을 이기지 못한다.'

일본 대지진의 상흔이 가득한 센다이(仙臺)시 아라하마(荒濱) 해안을 취재하기 위해 걷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쓰나미에 휩쓸린 태평양 연안의 동네는 지진 후 사흘이 지나도록 진창에 덮여 있었다. 조각난 기와지붕과 자동차 등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 위를 떠돌았다. 가로수도 뿌리째 뽑혔다. 주택 2700여채가 떠내려가고 최소 200명이 숨졌다는 말이 실감 났다.

펄에 널린 온갖 가재도구에선 생활의 내음이 진하게 묻어났다. 진흙 묻은 사진 한 장이 세차게 가슴을 때렸다.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소녀가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부모가 딸의 행복을 빌어주는 히나마쓰리(雛祭り)를 기념해 촬영한 것 같았다.

산산이 부서진 일상의 잔해가 가득한 도시에서 제 삶의 리듬을 잃지 않은 것은 새들뿐이었다. 일본어로 '도비'라 부르는 솔개 두어 마리가 내내 아라하마 상공을 맴돌았다. 한 번씩 저공 비행을 하는 것으로 보아 바닷물이 들이찼던 논밭에서 사냥을 하는 모양이었다.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도호쿠(東北)지방엔 새가 참 많았다. 쓰나미로 범람한 미야기(宮城)현 나토리(名取)강을 따라 '유리카모메(붉은부리갈매기)'가 떼를 지어 날았다. 피난소로 쓰이는 중학교 주차장에선 '하쿠세키레이(백할미새)'가 종종걸음을 쳤다. 인간 세상은 쑥대밭이 됐는데, 새들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작은 새들의 가벼운 몸놀림은 취재기간 내내 머리에 남았다. 고립된 피해지역에서 가장 먼저 품위를 상실하는 것은 인간이었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도시에 남은 사람들은 지저분한 머리카락을 모자로 감추고 난방용 등유(燈油)를 얻기 위해 긴 줄을 섰다. 인간이 자랑하던 모든 발명품은 수도·전기·가스가 끊기자마자 빛을 잃었다. 일본이 자랑하던 온갖 기술과 매뉴얼도 소용없었다.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엮은 개처럼 다룬다(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는 노자 도덕경 구절이 떠올랐다. 대지가 한 번 몸을 털자 인간이 쌓아올린 세계는 지푸라기처럼 바스러졌다. 재앙이 휩쓸고 간 땅에서 힘을 쓰는 것은 무정한 자연의 섭리뿐이었다.

희망은 오히려 제 날개만 믿고 살아가는 새들의 모습에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생명의 의지, 그보다 더 강하고 진실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괴로움 속에서도 누군가는 살아남아 대(代)를 이어가는 것이 생명의 법칙 아니던가.

쓰나미에 휩쓸렸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은 더 분명해졌다. 그들을 살린 것은 고성능 기기나 국가적 시스템이 아니었다. 오직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무둥치를, 다다미장을 부여잡은 두 손이었다. 일본 언론도 그런 사연들을 '희망의 증거'로 제시했다.

오늘도 솔개들은 아라하마 상공을 맴돌 것이다. 지진과 해일이 무너뜨린 도시에서도 아기들은 태어나고, 봄이 더 깊어지면 벚꽃도 필 것이다. 그저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할 모든 생명을 뜨겁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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