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02] 리스본 지진

조선일보
  •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입력 2011.03.18 23:29

    지진과 쓰나미가 대재앙을 가져온 역사적 사례는 적지 않다. 그 중 하나가 1755년 11월 1일에 일어난 리스본 대지진이다. 이날 아침 9시 40분, 포르투갈 서부 지역에 진도 9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앙은 포르투갈 남서쪽으로 200㎞ 떨어진 대서양 해저로 추정된다. 안전한 곳을 찾아 항구 지역의 공터로 달려간 사람들은 이상한 현상을 목도했다. 바닷물이 멀리 물러나면서 맨땅이 드러나 옛날에 침몰했던 배와 화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약 40분 후, 이번에는 엄청난 쓰나미가 몰려왔다. 운 좋은 소수만이 말을 타고 전 속력으로 높은 지대로 달려가 피신했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밀어닥친 바닷물에 휩쓸렸다. 시내 곳곳에 발생한 화재는 5일 동안 계속되었다. 이 엄청난 재앙으로 리스본에서만 수만 명이 사망하고 건물의 85% 이상이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적 손실도 적지 않아서 왕실 도서관의 귀중한 장서 7만 권과 루벤스, 티치아노 등의 그림들이 영영 사라졌다.

    리스본 지진은 계몽주의 시대 지식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예컨대 당대 대표적 문필가인 볼테르는 〈캉디드〉에서 변신론(辯神論, theodicy)을 비판하는 근거 중 하나로 리스본 지진을 들었다. 라이프니츠는 이 세상은 "가능한 최선의 세계 중에서도 최선의 상태"로 되어 있으며, 악(惡)이라는 것도 신이 선(善)을 이루기 위한 방편이라고 주장했지만, 수많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망하는 엄청난 재앙을 경험한 볼테르는 그런 낙천적 견해를 비판했다.

    자연의 엄청난 위력 앞에 인간이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맥없이 눌러앉아 있을 것인가? 포르투갈의 수상 폼발 후작은 곧바로 재건 사업에 매진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죽은 자를 묻고 산 자를 치유하자"는 것이 그의 모토였다. 1년 안에 리스본은 거의 완벽하게 재건되었다. 시내 중심부는 이전보다 더 아름다우면서도 지진에 충분히 견딜 만큼 튼튼하게 건축했다. 그리고 전국에 걸쳐 다음번 지진에 대비하기 위한 조사를 수행했는데, 이것이 지진학(seismology)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이웃 일본 역시 강한 의지로 역경을 이겨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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