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들 마음에 봄날을 되살리고 있는 60대 통기타 스타 '세시봉'(윤형주·송창식·김세환) 콘서트에 요즘 낯선 얼굴 하나가 보인다. 매 공연 중반부 쯤 수줍게 무대에 올라오는 초로(初老)의 사나이다. 풍채 좋은 그는 세시봉과 함께 중후한 저음으로 팝송 3~4곡을 불러 객석을 들썩이게 하곤 조용히 사라진다.

40여년 만에 '세시봉 제4멤버'로 무대에 복귀한 이익균(64)씨다. 그는 대학 초년생 시절 동갑내기 송창식, 윤형주와 함께 '세시봉 트리오'로 활동했었다. 지금 그의 직업이자 본업은 한진중공업 그룹 한국종합기술 전무로 토목 전문가이다.

1960년대 대학시절‘세시봉’멤버로 활동했던 이익균씨가 40여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현직은 토목설계감리회사 전무. 그가 인천 가정지구 택지 개발 현장에서 기타를 다시 잡았다.

그를 만난 곳은 인천 가정지구 택지개발 현장이었다. 건설 자재가 즐비한 곳에서 새로 들어설 공원을 만들기 위해 땅을 다지는 작업을 총괄하고 있었다. "뭘 여기까지 오셨느냐?"고 허허 웃으며 인사를 건넨 그는 "요즘 주말마다 친구들과 유쾌한 추억을 나눌 수 있어 즐겁다"고 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취를 한 상태에서 관객들 환호를 받으면서 노래할 수 있으니. 뭐 요즘 정말 살맛 나죠. 가수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창식이나 형주가 부럽지 않느냐고요? 전혀 아닙니다. 누구나 자기 몫의 인생이 있는 거잖아요. 성공한 친구가 있어 흐뭇할 뿐입니다.”

대중이 이씨의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된 계기는 지난 2월 MBC 설특집 '세시봉 콘서트'였다. 당시 그는 객석에 앉아 있다가 '친구'들의 즉석 초대를 받고 무대에 합류, 특유의 매혹적인 저음을 들려줘 큰 박수를 받았다. 이후 그는 주말마다 세시봉 전국 투어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금요일 퇴근 직후 KTX 등을 이용해 공연지로 가 2회 공연을 마친 뒤 일요일 오후에 귀경하는 식이다.

그는 대학교에 입학한 직후인 1967년 3월 당시 무교동의 유명했던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취미로 노래를 불렀다. 송창식, 윤형주를 만난 것도 그때. 송창식이 시원한 가창력, 윤형주가 감미로운 고음으로 인기를 얻고 있을 때 그 또한 무게 있으면서도 윤기 흐르는 저음이 매력적인 가수로 인정받았다. 세 사람이 뭉친 건 그렇게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목소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채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이익균의 입대 때문이었다. "특별한 생각 없이 휴학했는데 갑자기 영장이 나왔어요. 고민 많이 했지만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래에 대한 아쉬움이 참 컸지만요." 그는 자원해서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정도로 군 생활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치열하게 살고 싶었다"고 했다.

제대 후에는 노래와 학업의 갈림길에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솔로 가수 제의도 많이 받았지만 결론은 엔지니어의 길이었다. 그는 대한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들어가 서울·부산·광명·군산·진주 등 전국 각지의 아파트 공사에 참여했다. 국토개발시대의 한복판에 있었던 셈이다.

그는 세시봉 콘서트에 합류한 뒤 "환갑을 넘긴 나이에 청춘 시절의 꿈을 되찾았다"고 했다. "가족들이 제가 과거에 가수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까워했었는데 이제 그런 아쉬움이 사라졌다"고 했다. "중국에 살고 있는 딸이 저보고 자꾸 한번 놀러 오라고 난리네요. 동네 한국인 주부들 사이에서 제 인기가 그렇게 좋답니다. 허허. 쑥스럽네요."

[인사이드] 돌아온 세시봉 멤버 "평생 공사판 있다… 스타로 떴네"
[블로그] 내 젊은 날의 익숙한 풍경으로 다가온 '세시봉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