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일본이 전쟁보다 더한 대지진을 맞았다. 진도 9.0의 대지진은 1995년 일본 열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고베 지진의 무려 120배에 가까운 위력이었다. 10m를 넘는 쓰나미의 파괴력은 영화 '해운대'에서 본 장면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이번 일본 대지진의 참화로 인한 사상자 수는 1만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실로 가공할 만한 자연재앙에도 불구하고 허둥대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고, 질서를 지키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본인들을 보면 경외심마저 든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전기·가스·수도 등 생명선(線)이 차단된 곳이 남아 있고, 물·식량·의약품 등이 부족한 데다 가족 및 친지들의 생사확인도 어려운 실정이다. 주택은 물론 도로·철도·학교·병원 등 시설 복구에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차 세계대전 후 최대의 위기로 불리는 재해로 고통받는 일본인들을 우리는 어떻게 도와야 하나? 첫째,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도와야 한다. 일본은 지구촌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의 친구가 진짜 친구다. 피할 수도 없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천재지변은 우리에게도 언제든 닥칠 수 있다. 만약 대지진이 태평양 쪽이 아니라 동해 쪽에서 발생했다면 쓰나미는 우리나라 동해안을 덮쳤을 것이다. 대일(對日) 감정이나 타산적인 고려를 뒤로하고, 인도적인 견지에서 따뜻한 마음을 담아 도와야 한다.

둘째, 신속하면서도 통 큰 지원을 해야 한다. 정부가 5명의 선발대를 보낸 후 다시 102명의 긴급구조대를 파견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말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일본에 지원의 손길을 펼쳐야 한다. 일본이나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아가며 생색을 내기 위해 찔끔찔끔 지원할 게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아낌없이 화끈하게 도와야 국격(國格)이 산다. 긴급구조 및 물자지원, 의료 제공, 실종자 수색, 쓰레기 및 잔해 처리 등 할 일은 부지기수로 많다.

셋째, 재일(在日) 한국인의 체면이 서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한국은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교포와 유학생이 아주 많다. 피해자의 일부는 바로 우리 동포들이다. 재일 한국인 사회가 가진 일본인들과의 소통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일본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을 주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일본이 재해를 극복하고 난 후, 일본인들이 한국뿐만 아니라 재일 한국인 사회와 우리 유학생들의 도움을 기억한다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품위를 갖게 될 것이다.

넷째, 지속가능한 지원에 신경을 써야 한다. 재해 복구 초기에는 금전적인 지원이나 물자 지원이 긴요하다. 하지만 재해를 딛고 일어서려면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며, 한국은 여기서도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 가족이나 친지들의 생사 확인 등 소셜 네트워크의 회복, 주거 및 공공시설의 복구와 재건, 고령자 및 노약자 돌보기 등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 일본인의 '마음 달래기'에 동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일본과 교류관계를 맺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협력 및 제휴관계에 있는 단체와 협회, 비즈니스 제휴관계에 있는 재계는 물론, 시민사회, NGO, 나아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층적이고 다면적인 지원을 한다면 한국의 도움은 더욱 일본인들의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