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박은주의 快說] 石선장 살려낸 이국종 교수

조선일보
  • 박은주 문화부장
    입력 2011.03.12 03:02 | 수정 2011.12.15 16:03

    "난 잃을 게 없는 '칼잡이'… 세상은 날 의사라 부른다"
    "환자 살릴수록 적자 쌓여… 괴로워 외국 용병업체 취업 생각도"

    石선장에게 가다
    왜 내가 오만에 갔냐고? 나도 서울대서 갈줄 알았다
    "잘해야 기본" "죽는 길"…동료들도 말렸다

    연착륙
    한국 오자마자 수술하는데 칼 대는 곳 마다 고름…
    2월 18일 되니 느낌 오더라 "비행기 착륙 직전 그 느낌"

    "옥쇄를 각오하는 심정."

    '아덴만 여명 작전' 중 총에 맞은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에어앰뷸런스에 싣고 돌아온 지난 1월 29일, 의사 이국종(42·아주대 의대 중증외상센터장)의 말이다. 죽을 각오라는 거다. 뭐, 그리 비장하게 말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의 모습을 TV에서 봤다. 얼굴에 표정이란 게 전혀 없었다. 긴장이나 카메라 공포증과는 다른 어떤 것이었다.

    석 선장이 돌아온 다음 날인 지난 1월 30일 일요일 밤, 그를 만나러 갔다. 역시 무표정했고, 말투는 냉담했다.

    냉랭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기자가 농담을 건넸을 때, 그가 말했다. "내 눈 똑바로 봐라. 목숨 다 내놓고 뭘 해본 적 있나." 그래도 어찌하여 두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눴다. 자정이 넘어 수원을 떠났을 때, 그가 전화를 해왔다. "인터뷰 내지 말아달라. 자존감이 없는데 무슨 인터뷰냐. 더욱이 선장님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한 3개월 후에 보자." 일단 쉬었다. 그리고 2주 후인 2월 13일, 그리고 지난 7일 세 번에 걸쳐 그를 만났다. 석 선장이 이국종의 환자였던 건 7일까지였다. 그가 예상한 '3개월'보다 훨씬 앞선 지난 8일부터 석 선장은 정형외과로 옮겼다. 그의 환자가 된 지 42일 만이다. 이제 살았다는 의미다. '까칠'했던 이국종이 인터뷰 중 맥주를 건넸다.

    9일 경기도 아주대학교 병원으로 헬기에 실려 응급환자가 실려왔다. 외상전문의 이국종 교수가 응급 수술을 마친 뒤 수술방을 나서고 있다. 이국종의 요청에 따라, 경기도 119 응급서비스(119 EMS) 헬기가 아주대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기 시작했다.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의 주치의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이런 위급한 환자는 그에게 일종의 존재 이유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세상이 다 아는 VIP 환자

    ―석 선장이 1월 21일 총 맞았는데, 이 선생은 26일 오만에 도착했다. 오래 걸렸다. 혹시 '폼 나는' 사람 고르려다 그렇게 된 건가.

    "23일부터 정부, 삼호해운에서 갈 수 있나 물어보더라. 그러더니 24일 '서울대병원에서 누가 간다'고 해서 난 수술 들어갔다. 그날 밤 다시 전화로 '내일 갈 수 있나' 묻더라. '잘해야 기본' '가면 죽는 길'이라고 말하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팀을 만들어 가기로 했다. 난 잃을 게 없으니까."

    ―의사가 잃을 게 없다니 무슨 뜻인가.

    "묻지 마라.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석 선장 상태가 정말 위중할 땐 언제였나.

    "오만에 가서도 상황이 매우 안 좋았고, 돌아와 바로 수술하는데 배를 열었더니 칼 대는 곳마다 고름이 나오더라.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배는 10여일 후쯤 봉합했다. 삽관 제거 후에도 호흡기능부전이 와서 애먹었다."

    ―안정권에는 언제쯤 들어왔나.

    "2월 18일쯤 되니까 비행기가 착륙하기 직전 느낌이 오더라. 연착륙시키기 위해 이후 3일간 정신없었다. 25일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석 선장이 잘못되면 "왜 아주대로 갔느냐, 그럴 줄 알았다"고 논란이 될 우려도 컸다. 의사가 말을 세게 한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고.

    "알고 있다. 나는 대단한 의사가 아니다. 하지만 환자 상태를 정확히 모르는 여러 의사들이 '기관 절제를 더 일찍 했어야 했다'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얘기들 하더라. 내 인생, 아주대 입장에서 이렇게 유명세가 큰 환자는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없겠지만, 사실 선장님은 중증도로 봤을 때, 내 환자 중 상위 30% 정도였다. 후배들은 중간 정도라 하더라. 석 선장님의 차트엔 증상이 두 줄이다(그럼에도 10가지가 훨씬 넘는다). 그런데 네 줄짜리 환자도 수두룩하다."(중증외상특성화센터는 의외로 고요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중환자만 모여 있기 때문이다.)

    ―석 선장과 정서적 교감 같은 게 있나.

    "사실 해적에게 납치돼도 가만히 있으면 걱정 없이 되레 편하게 지낼 수 있다더라. 그런데 선장님이 그런 (용기있는) 행동을 한 거 아닌가. 처음엔 '훌륭한 분이구나, 꼭 살리고 싶다'고만 생각했는데, 며칠 전 얘기해보니 간단치 않은 분이더라. 뭐랄까, 정신이 있다고 해야 하나."

    ―석 선장 몸에서 빼낸 총알 잃어버렸다고 논란이 됐는데, 왜 잃어버렸나. 정말 이 선생이 잃어버린 건 맞나.

    "해양경찰과 검찰 조사만 7번 받았다. 그나마 이 일을 하면서 본 사람 중 검사가 가장 일을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얘기는 더 할 수 없다."

    ―지난번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병원에 왔을 때 사진을 보니, 표정이 싸늘하더라. 원래 표정이 그런가.

    "손 대표에게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정부에서 만들어놓은 응급의료체계 중 중증외상분야가 상태가 좋지 않다'고 직언을 한 후에 찍어서 더 그렇게 나왔을 거다. 특별히 무슨 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만에서 우리 정부 사람들과 호흡 맞추는 일은 어땠나. 정부 사람들이 일 잘하나.

    "거기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언론의 반응' '정무적으로'였다. 그 얘기도 더 이상은 하기 힘들다."

    ―오만 의료진이 제대로 했다면 석 선장이 좀 더 일찍 회복될 수 있지 않았나.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응급의료체계에 관한 한 오만은 우리보다 훨씬 선진국이다. 오만은 영국식 중증외상시스템을 갖춰 놓고, 매뉴얼대로 정확하게 움직인다. 정말 영화처럼 스태프들 호흡이 척척 맞더라. 인구 30만인 우리 지방도시에서 외국인 노동자 환자가 복부 관통상을 포함해 온몸에 6발의 총을 맞았다면 과연 살아날 수 있었을까.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첫 수술은 오만에서 아주 잘했다. 거기가 인구가 적은 이슬람 국가라 피가 모자라고, 첨단 의료기기나 첨단의약품이 우리나라에 더 많기 때문에 여기로 온 거다. 거기 오만이 우습다고? 웃기지 말라고 해라."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이 아니었더라면, '아덴만 여명 작전'의 성공도 장담하기는 힘들었다. 사진은 석 선장이 지난 1월 22일 오만 살랄라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모습. / 아주대 병원 제공
    수술이 끝난 후… 의사 이국종이 기사 쓰지 말라며 보낸 이메일에 들어 있는 사진. 그는 이렇게 썼다. '수술 직후에 엉망인 수술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선 너무나 평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치 바다에 큰 함선이 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피가 흥건한 바닥에 '외과 이국종'이라 쓰인 슬리퍼가 눈에 띈다. 원래는 컬러사진이다.
    ◆종이로 소나기 막는 기분

    응급실을 떠올려 보자. 진짜 급한 환자도 있지만 약이나 주사 같은 간단한 처방으로 끝나는 경우도 상당수다. 어떤 의사는 이걸 '야간 약국'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야간에 난 대형 교통사고 환자나 공장 사고 환자들은 여전히 이 병원 저 병원 떠돌다가 죽기 십상이다. 심한 외상이 여러 곳인 중증외상(trauma)환자의 경우, 제때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죽는 환자 비율이 약 30% 선이다. 전보다는 나아졌다지만 아직도 이 수치는 일본이나 미국의 두세 배다. 중증외상을 다루는 응급센터 시스템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전국 6개 지역에 '권역별 응급의료센터'를 지정, 설립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현장에 가서 보니 아예 고참의사용 당직실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 정부 방안에는 전문의가 야근할 경우 20만원 내외의 야근비를 주고, 당직실을 만드는 내용이 들어 있을 정도다. 이국종은 몇년 전 이런 상황을 "종이로 소나기를 막는 기분"이라고 했었다.

    ―우리 상황이 대체 어떻기에 그런가.

    "자기 손에 피 묻혀 본 사람, 즉 진짜 칼잡이는 별로 없는데, 외상의학을 안다고 하는 사람은 많다. 이미 들어간 돈으로 치면, 우리나라 병원은 세계 톱 수준의 외상의학센터를 확보했어야 한다. 그런데 병원만 크게 지어놓고 시스템, 의사가 없다. 응급센터 지어놓고 응급실로 전용하는 경우도 많다."

    ―외상외과 응급체계의 문제는 뭔가.

    "응급실 당직 의사는 주니어가 대부분이다. 내장 다 터져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중증외상환자 수술은 어렵다. 큰 병원들은 시설이 좋아도 중증외상환자를 받지 않는다. 비용에 비해 수가가 안 나오니까. 반면 병실이 비는 병원들은 중증외상환자를 받아 침상을 채우려고 하는데, 그런 데는 시설이 안 받쳐 준다."

    ―이 선생이 준 책자와 영상자료를 보니 외상환자 살리는 시스템은 매우 간단하더라. 환자의 부상 정도에 따라 레벨을 나누고, 거기 맞는 병원으로 후송하고, 바로 처치하는 것이더라. 그게 왜 그리 어렵나.

    "대한민국 대형병원 응급실처럼 이렇게 병상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가 없다. 외상센터의 경우 이렇게 많은 응급실 병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충분한 수술실과 중환자실 규모가 필요하다. 헬기로 40㎞ 정도는 커버할 수 있다. 권역별로 짓고, 환자 구분 체계 매뉴얼 확실히 만들고, 외상센터마다 전문의들이 집에 안 가고 당직 잘 서면 된다. 내가 연수 가서 보니, 인구 1000만명이 되는 큰 도시 런던에 거점병원 4개가 있더라. 거기서 정보 주고받으면서 철통같이 외상환자들을 치료한다. 그러니까 예방 가능한 사망률이 그렇게 낮은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라지만 전문의가 별로 야근을 안 선다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다.

    "외래 선호는 불가피하다. 외래 환자는 반가운 환자다. 낮 시간에 약속 맞춰 서로 기분 좋게 딱 만나고, 시간 정해놓고 헤어지면 되는 거다."

    ―얼마 전에도 장중첩증 아이가 경북지역 여러 큰 병원에서 거절당하고 이 병원 저 병원 돌다 죽었다. 왜 큰 병원에서 '우리 병원은 중증환자는 받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히질 않나.

    "계륵이다. 병원 위상도 있으니까. 그게 일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더 위험하다."

    ―그날 당직의사의 부도덕성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인가.

    "복합적인 문제다.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그대로 투영된 거다. 한국은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자기 할 일을 미루는 게 익숙하지 않은가. 글로벌 스탠더드와 경쟁이 없다. 의사는 현재 상태에서는 해외와 경쟁할 필요가 많지 않다."

    ◆피곤해 보인다, 그의 인생

    이국종이 응급외상센터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다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동료에게 '이 선생이 왜 이리 스트레스를 받는가' 하고 물었다. 지난해 그의 적자가 7개월간 8억원이 넘었다는 얘기를 해줬다. 피를 폭포처럼 쏟는 환자를 수술할 때는 혈액이 50봉지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건 작은 예일 뿐이고, 그가 쓰는 첨단의료장비·인력·약품 등 투입하는 비용에 비해 받는 치료비는 훨씬 적다. 행려병자를 치료하다 사망하면 그 비용도 이국종의 '적자'로 기록된다. 이런 계산은 대부분 병원에서 다 하는 일이다.

    ―외상외과 하면서 굉장히 힘들었다고 하더라.

    "굉장히 슬플 때가 있다. 내가 뭘 것 같은가. 때로 내가 병원에서 불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조직의 휴짓조각 같은 느낌 아나. 생각해봐라. 병원이 소년소녀가장에게 1억원만 기부해도 좋은 일 한다고 칭찬할 거다. 그런데 내가 일을 하면 할수록 병원 적자폭이 커진다고 한다. 병원 욕하지 마라. 아주대 병원은 굉장히 훌륭한 병원이다. 나를 아직도 거둬 여전히 붙어 있지 않나. 다른 병원에서 일하던 의사의 경우, 대부분 사직하거나 전공을 바꿨다. 몇년 전 외상외과 하다가 브랜치병원으로 발령 난 어떤 선배한테 다시 해보라고 했더니, '생각도 하기 싫다'고 하더라. 가슴이 답답하다."

    ―밖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니까 자부심이 클 줄 알았다.

    "어떤 의사가 진검승부를 할 것 같나. 심장 여는 사람? 아니다. 진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열심히 하는 의사는 성형외과 의사들이다. 수입이 안 좋으면 바로 문 닫으니까. 환자가 느끼는 만족감은 대단하다. 하지만 중증외상환자는 자기가 어떻게 다쳐 왜 이 병원에 왔는지 모른다. 좀 좋아지면 나한테, 간호사한테 욕하는 사람도 많다."

    ―왜 욕을 하나.

    "외래에서 만난 환자가 이상하면 '저 자신 없는데, 큰 병원 가세요' 하면 그만이라고들 하더라. 외상 환자는 그게 안 된다. 내가 만난 환자 중엔 조폭 양아치도 있었고, 상당수가 저소득층이다. 복받치는 게 많은 사람들이다."

    ―암 수술 잘 해주면 평생 은인으로 생각하지 않나.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주는데 욕을 먹는다?

    "암환자는 좋은 병원, 좋은 의사를 찾아간다고 생각하니 의사에게 숙이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내 환자분들은 나를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게 아니다. 운전하다 의식 잃었다가 깨어보니 인공항문이 생겨 있고, 하반신도 못 쓰면 누구나 열받지 않겠나."

    ―왜 이 병원에는 그런 환자만 오나.

    "에어백 있는 외제차 타는 환자는 딱 한 번 왔었다. 분당의 병원에서 안 받아줘서. 노동층은 외상으로 죽을 확률이 화이트칼라보다 20배 이상 높다. 내 환자 중엔 건설노동자·공장 노동자·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같은 이들이 많다. 내가 총상전문가라고 언론에 나와 웃었다. '내가 언제 총상전문가였지?'하고. 공장에서 분당 5000~6000회로 돌아가던 볼트가 빠져 배에 박히면 간장·담도·췌장이 다 파열된다. 그거에 비하면 총상은 간단하다. 프레스에 눌리면 내장이 터지고 장기가 밑으로 다 빠진다. 그런 환자들을 봐왔으니 선장님이 그다지 중증환자로 안 보이는 거다."(이국종의 사진 파일에는 내장이 다 깨져 배 밖으로 나온 사람이 서서히 사람 모습을 갖춰 가다가 걸어서 퇴원하는 과정이 날짜별로 담겨 있다. 현대의술의 신비다)

    ―그런데 중증외상치료 체계가 부실하다는 얘기는 별로 공론화된 적이 없다.

    "정책 결정하고 사인하는 분들이 사고를 당하면 유수한 병원 의사들이 밤에도 뛰어나온다. 그분들 사인은 외상이 아니라 당뇨나 암, 심혈관계 질환 같은 것이다. 그런 분야에는 약도, 기기도 첨단이 들어오고, 어느 병원이나 밤에 대응을 잘한다. 하지만 사회취약계층이나 보통 사람이 화를 크게 입으면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게 된다."

    ―그 때문에 정부가 중증외상센터, 권역별 응급센터를 지정한다는 거 아닌가.

    "중증외상·응급센터에 대한 정부나 사회 관심이 4~5년 주기로 왔다가 사그라지더라. 이젠 좀 지쳤다. 변하는 게 별로 없으니까. 의욕적이던 보건복지부 담당자들도 자주 바뀌어 어렵다. 게다가 사회취약층인 외상환자들을 위해 정부지원이 있을 예정이라고 하면 이익집단이 끼어든다."(다른 전문가는 "외상외과 전문의를 벌써 양산했다고 주장하는 곳이 있는데, 그 중 상당수가 외상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게 절망적이어서, '잃을 게 없다'고 한 것인가.

    "너무 힘들어 한때 해외취업난만 계속 찾아보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 블랙워터(세계 최대 용병회사·현재 XE)에 취직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니까. 최소한 외상외과에 대한 수요와 존중이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이 일은 어떻게 시작했나.

    "석·박사 논문이 대량 간 절제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석·박사 지도교수이자 당시 외과과장님께서 외상외과를 권하시더라. 별생각 없이 남았다. 수술하는 것도 좋고, 대학에 남아서 공부 계속하고 학생도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에. 사실 이렇게 오래할 줄은 전혀 몰랐다. 그다지 큰 꿈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꿈과 기대가 너무 많아 애정도, 화(火)도 많은 것 같다.

    "지금도 배를 갈랐을 때 피가 확 솟거나, 췌장 깨진 환자 수술을 맡으면 긴장된다. 그런데 이게 마약 같은 면이 있다. 잔디밭 스프링클러처럼 여기저기서 확 솟던 피를 수술로 막으면 드디어 혈압이 딱딱 잡힌다. 저승에 가 있던 사람이 살아오는 거다. 배에 고름이 가득해 하루 넘기기 힘들겠던 사람이 살아나기도 한다. 그게 다 손끝에서 결정 나니까."

    ―성격이 까칠한데도 장애 얻은 환자들이 지원받을 곳도 알아봐 준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버지가 장애2급 국가유공자다. 6·25 때 지뢰를 밟아 눈과 팔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이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냉랭하고 비정한지 잘 안다. 그래서 의대에 갔다."

    "석 선장님 살린 것은 내가 대단해서 그런 게 아니다" "누구라도 이렇게 할 수 있다"며 기사를 쓰지 말라고 면전에서, 전화로 기자를 여러 차례 괴롭히던 이국종이었지만, 행여 쓴다면 잊지 말라고 당부한 말이 있다. "석 선장님에겐 국가가 보상해줘야 한다. 훈장도 주고. 군인이 아니라 안 된다 하면 누가 국가를 위해 희생하겠나. 정말 반드시 되도록 해야 한다."

    이국종과 이야기하는 것은 고되다. 열정은 뜨겁고, 비판은 호되고, 태도는 냉소적이다. 과도한 자기비하는 자부심의 다른 얼굴같기도 하다. 집에도 잘 안 가는, 새벽 언제든 전화를 받는 이 의사, 조금은 '미친 의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어떤 광기가 있다면, 그건 분명 사람을 살리는 쪽일 것이다.

    9일 오후 경기도 아주대병원에서 외상외과 전문의 이국종 교수를 만났다. 이날 이 교수에게 석해균 선장으로 관심이 높아진 한국 중증외상치료 현실에 대해 물었다. /민봉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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