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 커피 역사'… 다 틀렸다

조선일보
  • 김충령 기자
    입력 2011.03.12 03:02 | 수정 2011.03.13 02:58

    국내 유일의 커피박물관 관장 박종만씨 주장
    "1호 커피점은 명동 후타미 아닌 남대문역 다방… 고종이 덕수궁 정관헌서 커피 즐겼다? 천만에"

    도심 속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커피전문점이 있다. 카페베네·엔제리너스·스타벅스·할리스 등 12개 주요 브랜드의 커피전문점만 전국적으로 2100여개를 훌쩍 넘는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커피믹스의 시장 규모는 연 1조원 규모다. 이제 커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료'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 커피가 언제 도입됐고 어떤 문화를 꽃피웠는지에 대해선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최초로 커피를 판 다방은 1923년 문을 연 명동의 후타미(二見) 다방으로, 고종이 처음 커피를 접한 것은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 때로, 덕수궁 정관헌(靜觀軒)은 고종이 커피를 즐긴 '커피1호점'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내 유일의 커피박물관 '왈츠와 닥터만' 관장 박종만(51)씨는 이러한 커피 문화 '상식'에 반기를 든다.

    1913년 문을 연 ‘남대문역 다방’ 의 내부 모습. 하얀 유니폼을 입은 다방 직원과 근대풍의 내부 장식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 왈츠와 닥터만 제공

    커피 문화사를 연구하는 그는 구한(舊韓)말의 역사자료를 조사하다 명동의 후타미보다 10년 앞선 커피 다방의 존재를 발견했다. 1913년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문을 연 '남대문역 다방'이 그곳이다. 1915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펴낸 '조선 철도여행 안내'라는 문고판 책자에는 '남대문역 기사텐(다방·喫茶店) 내부'라는 글귀와 함께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테이블 옆에 서서 포즈를 취한 내부 모습과 '남대문역 기사텐'이라 쓰인 외부 입구 전경 사진이 수록돼 있다. 그가 철도박물관 문서 자료에서 찾아낸 기록에는 "1904년 2월 당시 27세의 나이에 조선으로 건너와 경성의 잡화점 무라타(村田)상점에서 일본군에 식료품을 공급하던 종업원이었던 마츠이 카이치로(松井嘉一郞)는 1906년 3월 이 상점을 인수하여 영업을 하던 중, 1913년 4월부터는 조선 총독부 철도국 남대문역 기사텐 및 식당차용 물품을 납입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박씨는 "1910년대에 이미 일반 대중이 커피를 즐기는 다방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커피의 전래 시점이 잘못 알려진 것은 인터넷포털사이트를 통해 정확하지 않은 자료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퍼졌고,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사실로 받아들인 탓"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커피는 이제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문화이자 생활"이라며 "커피 문화사를 연구하며 자연스럽게 구한말·일제강점기 당시 생활상을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아관파천보다 12년 앞선 1884년 우리나라에 온 미국의 천문학자 로웰(Lowell)이 쓴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Morning Calm)'에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기록이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고종이 커피를 즐겨 마시던 곳으로 알려져 한 커피전문업체가 커피문화행사까지 열었던 덕수궁 정관헌에 대해서는 "우리 역사 자료 그 어디에도 정관헌이 커피를 마시던 곳이라는 기록은 없다"고 했다. 그는 "커피를 통해 문화 콘텐츠를 만든 좋은 시도였지만, 정확하지 않은 고증을 바탕으로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잘못"이라고 아쉬워 했다.

    박씨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료를 발굴·연구해 우리의 커피 문화를 기록하고 보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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