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 르네상스 시기'로 불리는 1980년대 말~90년대 초 음반들이 현행 저작권법의 맹점(盲點) 탓에 대거 '공짜'가 될 위기에 처했다. 이문세·서태지·신승훈·김건모 등 발매 당시 100만~200만장씩 팔린 음반들의 저작인접권이 차례로 하나씩 소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음반업계에서는 이런 사실이 악용될까 봐 쉬쉬하면서도 저작권법 개정안이 몇년 째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문제가 되는 음반들은 1987년부터 94년까지 국내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이 시기 음반들은 그 권리의 보호기간이 20년에 그쳐, 지난 2008년부터 순차적으로 '아무나 만들어 팔아도 되는 음반'이 되고 있다. 그러나 95년 이후 제작된 음반들은 이 권리를 50년까지 보장받아, 2046년부터 권리가 소멸되기 시작한다.
저작권은 크게 작사·작곡가의 권리인 '저작재산권'과 음반제작자와 실연자(實演者)의 권리인 '저작인접권'으로 나뉜다. 저작재산권은 작사·작곡가 사후(死後) 50년까지 보장된다. 저작인접권의 보호기간은 음반 발매 다음해부터 50년까지다.
87~94년 발매된 음반들의 권리가 유독 짧은 것은 저작권법을 개정하면서 발생한 허점 때문이다. 저작인접권은 87년 7월 저작권법 전면 개정·시행 당시 처음 등장한 권리로, 당시에는 '음반 발매 후 20년'까지만 보장됐다. 그러나 세계적 추세가 '발매 후 50년'으로 바뀌자 94년 법 개정 때 이에 맞춰 보호기간을 늘리되 소급적용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부칙에 "이 법 시행 전에 발생된 저작인접권의 보호기간은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저작인접권'이란 개념이 생긴 87년부터 94년 개정법 시행 사이에 제작된 음반의 권리만 '발매 후 20년'이 돼버린 것이다.
87~94년은 한국 대중음악의 최고 전성기였다. 이문세나 이승철, 봄여름가을겨울, 윤상, 신승훈, 서태지, 김건모 등의 음반은 최고 200만장 넘게 판매된 역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들이었다〈표 참조〉. 이 음반들의 저작인접권이 차례로 소멸됨에 따라, 누구든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일정한 저작권료만 지불하면 이 음반들을 다시 포장해서 팔 수 있게 됐다. 영화나 CF, 뮤지컬 등에 음악을 쓰려고 할 때는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음반으로 만들 때는 저작권료를 내기만 하면 된다.
87년 이전에 발매된 음반들의 권리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50년'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에는 '저작인접권'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으므로 현행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담긴 이문세 3집(1985년 발매)은 2036년이 돼야 권리가 소멸되는데, '사랑이 지나가면'이 수록된 이문세 4집(1987년 발매)은 2008년 1월 1일부터 권리가 소멸된 상태다. 김건모의 경우 '핑계'가 실린 2집(1993년 발매)의 권리는 3년 뒤인 2014년 없어지지만, '잘못된 만남'을 히트시킨 3집(1995년 발매)은 2045년까지 권리를 보호받는다.
1992년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1, 2집 음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서태지의 경우 음악저작권협회에서 탈퇴, 직접 저작권을 관리하고 있어 다른 음반처럼 아무나 낼 수 없다. '난 알아요'가 담긴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의 저작인접권은 2013년 소멸되지만, 서태지가 '작곡가로서의 권리'를 함부로 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런 법률상의 모순을 고친 저작권법 개정안을 두 차례 국회에 제출했으나 아직 통과되지 않고 있다. 문화부는 2007년 모든 음반의 저작인접권 보호기간을 50년으로 통일하는 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당시 17대 국회가 통과를 미루다가 임기를 마치면서 법안이 자동폐기됐다. 문화부는 2010년 8월 다시 이 법안을 국회에 내놓았지만 아직도 통과되지 않고 있다.
임원선 문화부 저작권정책관은 "87년 저작인접권이 처음 법에 등장할 때만 해도 '20년'은 매우 파격적인 혜택이었으며 이해당사자들의 아무런 이의제기도 없었다"며 "94년 재개정 때 '50년'을 소급적용하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된 판단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권리가 소멸된 음반을 아무나 발매해도 막을 근거가 없는 것이 사실이며 현재 행정명령으로 제지할 방법을 구상 중"이라며 "하루빨리 개정법안이 통과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권리를 소유하고 있는 음반제작자와 가수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너를 사랑해'가 담긴 2집 음반(1993년 발매)을 100만장 가까이 판매한 가수 한동준씨는 "내 음반의 권리가 20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양심 없는 제작자들이 함부로 음반을 내기 전에 법을 빨리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음반제작사 관계자는 "이 사실을 아는 제작자들도 법의 맹점을 악용하는 사람이 생길까 봐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2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정책과, 법 개정안 통과를 두 번이나 미루고 있는 국회가 원망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